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국제 미국·중남미

중남미 ‘린치핀’ 콜롬비아도 좌파집권…미 ‘관여전략’ 흔들리나

등록 2022-07-04 17:40수정 2022-07-05 02:45

중남미 ‘핑크타이드’ 최고조
미국 직접 이해관계 얽힌 뒷마당
멕시코·페루·칠레 이어 핑크 물결
마약 이민 문제 대응 시험대에

페트로, ‘반미 베네수엘라’ 챙겨
바이든 ‘대결 압박’ 받을 수도
사회주의·마약 이슈 등 ‘시각차’
지난달 23일 콜롬비아 수도 보고타에서 구스타보 페트로 콜롬비아 대통령 당선자(왼쪽)와 프란시아 마르케스 부통령 당선자가 당선증을 들어보이고 있다. 보고타/EPA 연합뉴스
지난달 23일 콜롬비아 수도 보고타에서 구스타보 페트로 콜롬비아 대통령 당선자(왼쪽)와 프란시아 마르케스 부통령 당선자가 당선증을 들어보이고 있다. 보고타/EPA 연합뉴스

“내 견해로 콜롬비아는 남과 북을 포괄하는 전체 서반구의 ‘린치핀’(핵심축)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3월10일 백악관을 방문한 이반 두케 대통령에 이렇게 말하고, 콜롬비아를 ‘비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주요 동맹(major non-NATO ally)’으로 지정했다. ‘린치핀’은 바퀴 등 부품들을 떨어져 나가지 않게 묶는 고정쇠로, 복잡한 상황이나 체제를 유지하는데 가장 중요한 부분을 일컬을 때 쓰는 말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 때부터는 미국은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한-미 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할 때 이 용어를 써왔다. 즉, 미국에 콜롬비아는 아시아의 한국만큼 중요한 동맹이란 의미다.

콜롬비아는 중남미 내부는 물론 미국의 중남미 정책에서 핵심축이 되는 국가이다. 그런 나라에서 지난달 19일 도시 게릴라 출신 좌파인 구스타보 페트로(62)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로 인해 2000년대 이후 이어져 온 중남미의 ‘핑크 타이드’ 즉 진보 좌파정권 물결은 최고조로 치닫고 있다. 중남미 7대 주요국 가운데 멕시코·아르헨티나·페루·베네수엘라·칠레에서 진보좌파 정부가 탄생했고, 콜롬비아가 곧 이 흐름에 합류한다. 10월로 예정된 브라질 대선에선 진보적인 루이즈 이나시오 룰라 다실바의 대통령이 복귀할 것이 유력하다. 남미의 주요국 모두에서 진보좌파 정권이 들어서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흐름보다 훨씬 더 의미가 큰 것은 콜롬비아에서 진보좌파 정권이 탄생했다는 사실 자체다. 중남미는 지정학적으로 아마존강 유역을 경계로 남북으로 나뉜다. 북쪽은 카리브해 연안으로 역사적으로 미국·유럽 등과 직접적 이해 관계가 깊다. 남쪽은 지리적으로 고립돼 있어 미국·유럽 등에 주는 영향이 상대적으로 약하다. 워싱턴에서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까지 거리는 대서양을 사이에 둔 파리와 거리보다 1600㎞나 멀다.

중남미 국가들의 독립 물결이 일던 1823년 제임스 먼로 당시 미국 대통령은 유럽 열강들이 아메리카 대륙 문제에 개입하는 것을 반대한다는 ‘먼로 독트린’를 선언했다. 중남미에서 미국의 ‘직접 개입’은 카리브해 연안 지역에 집중됐다. 미국은 2차 세계대전 전까지 1848년 미국-멕시코 전쟁, 쿠바의 영유권을 둘러싼 1898년 미국-스페인 전쟁, 1912년 니카라과 점령, 1915년 아이티 점령, 1916년 도미니카공화국 점령 등 수많은 군사개입을 이어왔다. 2차대전 이후에도 1961년 쿠바 피그스만 침공, 1980년대 니카라과 콘트라 반군 지원, 1983년 그레나다 침공, 1989년 파나마 침공 등이 있었다. 미국의 ‘내해’인 카리브해 국가들의 운명이 미국의 안보와 경제에 직접적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카리브해 연안 지역에서 콜롬비아의 입지는 그야말로 ‘린치핀’이라 할 수 있다. 남북으로는 남미와 중·북미를 잇고, 동서로는 카리브해와 남미의 태평양 연안을 연결한다. 이런 지리적 중요성 때문에 스페인의 남미 식민지는 이곳에서 시작됐다. 이 나라가 중요한 또다른 핵심 이유는 파나마 운하이다. 미국은 1903년 당시 콜롬비아 영토였던 파나마에서 운하를 건설하려고, 이 지역의 분리독립 운동을 지원하고 운하를 미국 소유로 만들었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냉전 시기에 접어들며 콜롬비아의 중요성은 배가됐다. 첫째는 사회주의 확산을 막는 ‘방파제’ 역할이었다. 콜롬비아는 독립 이후 친미보수 정권이 이어질 정도로 보수우파의 기반이 강하다. 식민지 때부터 상업용 작물 재배를 통해 성장한 대지주들의 기반이 탄탄한데다 산업계 역시 미국과 연관이 깊다. 2차대전 전에 남미에서 처음 미군 기지가 만들어졌고, 남미 국가 가운데 유일하게 한국전쟁에 파병하는 등 지역 내 미국의 최대 군사동맹국을 자임해 왔다. 중남미 군사정권의 장교들을 육성하기 위해 파나마운하 지역 내에 만들어진 미 육군의 아메리카군사학교(SOA)의 중추도 콜롬비아 군부다. 그런 한편, 중남미 사회주의 세력의 시험장이기도 했다. 1950년대부터 농촌 지역에서 무장 게릴라 운동이 시작됐고, 1964년에 콜롬비아무장혁명군(FARC)과 민족해방군(ELN)이 결성돼 내전이 이어졌다. 2016년 이들과 콜롬비아 정부 사이에 평화조약이 체결됐지만, 2018년 강경우파인 두케 대통령이 집권한 뒤 형해화되고 있다.

두번째는 마약 문제다. 콜롬비아에서 내란이 발생한 중요 원인은 2차대전 후에 미국에서 코카인 수요가 급증했기 때문이었다. 좌파 무장단체들이 마약 재배에 관여하기 시작하자 전통적 마약 카르텔들은 이들을 소탕한다는 명분으로 우파 무장세력과 결탁해 세력을 키웠다. 최대 규모였던 ‘메데인 카르텔’은 1980년대 중반 하루 최고 6천만달러(778억원)를 벌어들였다. 뒤를 이어 패권을 잡은 ‘칼리 카르텔’은 1990년대 중반에 연 70억달러(9조867억원) 규모의 사업을 벌였다.

미국은 1990년대 초 암세포처럼 커진 마약 카르텔을 소탕하기 위해 군사력까지 동원했다. 1993년 메데인 카르텔의 두목 파블로 에스코바르가 사살됐고, 1995년 칼리 카르텔이 붕괴됐다. 하지만, 콜롬비아의 마약 문제는 여전하다. 거대 카르텔이 붕괴됐을 뿐 마약 재배는 줄지 않았다. 1990년대 초반보다 4배나 많은 코카인이 생산되고 있다. 2016년 좌파 무장게릴라들과 평화조약 이후 정부는 2020년 기준으로 13만㏊의 마약 재배 밭을 소각하고 대체 작물을 심게 했다. 하지만, 1%만이 대체작물을 재배하는데 그쳤다. 그 대신 멕시코의 마약 카르텔들의 세력이 커지는 ‘풍선효과’만 일어났다.

세번째는, 베네수엘라 문제다. 1999년 베네수엘라에서 반미 사회주의자 우고 차베스가 집권하며 중남미의 정치지형이 급변했다. 차베스 정권은 석유 자원을 국유화하고, 중남미 사회주의 연대의 중심이 됐다. 베네수엘라와 살을 맞대고 있는 콜롬비아는 이 흐름을 막는 보루 역할을 했다. 2019년 후안 과이도 의회 의장이 차베스의 후계자인 니콜라스 마두로 정권에 반대하며 쿠데타를 일으키자 콜롬비아는 이를 지지하는 선도 역할을 했다. 콜롬비아는 과이도 정부를 인정한 첫 국가였고, 이후 지원을 이어갔다.

미국은 중남미의 △사회주의 △마약 △베네수엘라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 ‘콜롬비아 계획’에 따라 1999년 이후 130억달러(16조8753억원)의 경제·군사 지원을 했다. 하지만,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고 페트로 정부 탄생으로 큰 기로에 서게 됐다.

젊은 시절 좌파 도시게릴라 단체인 ‘M-19’(4월19일 운동)의 단원으로 활동했던 페트로 당선자는 보고타 시장 등을 지내며 온건화됐다. 하지만, 예전 보수우파 대통령들과는 분명 차별적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는 당선 연설에서 미국과 협조해야 할 문제로 ‘기후변화’만을 언급했다. 당선 이틀 뒤 이뤄진 바이든 대통령과 통화에 대해선 트위터를 통해 “더 긴밀하고 정상적인 관계로 가는 길 위에서 바이든 대통령과 아주 우호적인 통화를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후 그가 보인 첫 의미 있는 움직임은 선거 공약이었던 베네수엘라와 관계 정상화였다. 바이든 대통령과 통화한지 하루 만에 콜롬비아~베네수엘라 사이의 국경 개방을 놓고 마두로 대통령과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은 마두로 정권 붕괴 시도가 사실상 실패한 상황에서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로 인한 에너지난으로 베네수엘라의 석유가 필요해진 상황이기는 하다. 하지만, 페트로 정부가 등장하면서 베네수엘라에 대한 미국의 지렛대가 약해질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페트로 당선자는 그밖에 미국의 ‘마약과의 전쟁’의 핵심 정책인 코카 재배밭 강제 소각에 반대 입장이고,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도 재협상할 것이라 공약했다. 콜롬비아의 주요 수출품인 석유의 시추와 수출도 줄이겠다는 뜻을 밝혔다.

바이든 행정부가 페트로 정부에 ‘관여 정책’을 추진하려 해도 양국의 국내 정치 여건 상 가능할지 불투명하다. 페트로의 집권 연정인 ‘역사적 조약’은 상·하원에서 1당이지만 각각 18%와 15%의 의석만 갖고 있다. 콜롬비아의 뿌리깊은 보수우파 엘리트와 군부는 페트로 정부 흔들기에 나설 것이 분명하다. 미국 선거를 좌우하는 플로리다·조지아 등 스윙스테이트 내의 중요 정치 세력이 된 콜롬비아 등 중남미 출신 유권자들도 미 행정부의 콜롬비아 정책을 관여보다 대결로 몰고 갈 세력이다.

미국은 유럽에서 우크라이나 전쟁과 씨름하던 와중에 ‘뒷마당’에서 콜롬비아라는 복병과 만났다. 콜롬비아는 미국 시민과 중남미 국가들이 피부로 느끼는 마약 문제의 최대 상수이자, 지역 정세가 불안정해지면 심화되는 이민 문제를 좌우할 중요 변수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국제 많이 보는 기사

고속도로 운전 중 다리에 뱀이 스멀스멀…기겁한 운전자 대응은 1.

고속도로 운전 중 다리에 뱀이 스멀스멀…기겁한 운전자 대응은

우크라이나에 핵무기 반환?…미 백악관 “고려 대상 아니다” 2.

우크라이나에 핵무기 반환?…미 백악관 “고려 대상 아니다”

‘진보’ 샌더스도 “머스크가 옳다”…국방 예산 낭비 주장 힘 실어 3.

‘진보’ 샌더스도 “머스크가 옳다”…국방 예산 낭비 주장 힘 실어

한반도 긴장이 ‘성장 동력’…한·일 방산, 30%대 매출 급증 4.

한반도 긴장이 ‘성장 동력’…한·일 방산, 30%대 매출 급증

임기 한 달 남기고 말 바꾼 바이든…‘탈세·불법총기 소지’ 아들 사면 5.

임기 한 달 남기고 말 바꾼 바이든…‘탈세·불법총기 소지’ 아들 사면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