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수사국이 8일 아침 압수수색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마라라고 저택. AP 연합뉴스
미국 연방수사국(FBI)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플로리다주 마라라고 자택을 압수수색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8일 성명을 내고 플로리다 팜비치 마라라고 자택이 “현재 봉쇄됐고 습격받았으며 점거됐다”고 연방수사국이 압수수색 중이라고 밝혔다고 <뉴욕 타임스> 등 외신들이 보도했다. 압수수색은 이날 아침부터 시작됐다.
압수수색 이유는 발표되지 않았으나, 트럼프 전 대통령이 퇴직 뒤 백악관에서 가지고 나온 서류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미국 언론들은 보도했다. <뉴욕타임스>는 수사 관련자들 말을 인용해 “이번 수사는 트럼프가 백악관을 떠날 때 마라라고의 저택과 개인클럽으로 가져간 자료들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트럼프는 국립기록원으로부터 백악관에서 가지고 나온 15박스 분량의 자료 반환을 요청받았으나, 몇달 동안 미루다가 반환했다. 국립기록원과 기록청은 지난 2월 하원에 트럼프의 마라라고 자택에서 약 15박스 분량의 자료를 회수했고, 그 중에는 기밀자료도 포함됐다고 밝힌 바 있다.
미국에서 전직 대통령의 자택에 대한 압수수색은 전례가 없었다. 이번 수색은 트럼프의 대통령 재임 시절의 공무 및 개인사업과 관련해 그가 직면하고 있는 사건에 대한 수사가 급진전하고 있다는 신호라고 신문은 지적했다. 전직 대통령의 자택에 대한 수색영장을 발부받을 정도의 범죄가 저질러졌다는 것이 법원에서 받아들여졌고, 연방수사국과 법무부의 최고위층들도 이번 수색에 대해 동의했을 것이라고 신문은 전했다.
연방수사국과 법무부는 이번 수색에 대해 언급을 거부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의 백악관 참모들은 이런 사태 전개에 놀랐으며, 이를 트위터를 통해 알게 됐다고 밝히고 있다고 신문은 전했다.
백악관 자료 보존에 관한 법인 ‘대통령기록법’은 기밀자료 관련해 법을 위반할 경우 처벌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법에 따라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안보보좌관인 새뮤얼 버거가 지난 2015년 정부기록보존소에서 기밀자료 삭제 혐의를 적용받아 유죄를 선고받았다. 2007년에는 도널드 키서 전 국무부 관리도 기밀자료 3천건을 자신의 집 지하실에 보관하다가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이번 수색이 선거조작 사건과도 관련이 있을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최근 법무부는 지난 2020년 트럼프가 대선에서 패한 뒤에도 대통령직을 유지하려는 계획 수사 및 트럼프의 참모들에 대한 심문을 강화해왔다. 연방 검찰은 트럼프 쪽이 선거인단 선거를 조작하기 위해, 가짜 ’선거인단’을 의회에 보내려는 음모를 짰다는 혐의를 잡고 수사를 확대해왔다.
법무부는 지난 대선 때 경합주의 선거인단들에게 대배심 소환장을 발부하기 시작했다. 소환 대상이 된 선거인단에는 트럼프의 승리를 인증하는 가짜 인증서에 서명한 이들도 포함됐다고 <로이터> 통신은 전했다. 연방검사들은 선거인단과 트럼프 쪽 연방관리나 핵심인사들 사이의 접촉을 파헤치고 있다고 전했다. 선거인단에 접촉하려는 인사로는 트럼프의 변호인인 루디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 등이 포함됐다.
트럼프는 이번 수색에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그는 성명에서 “우리나라에 어두운 시대”라며 “나의 집에 대한 공표되지 않은 습격은 필요하지도 적절하지도 않다”고 비난했다. 그는 또 이는 자신의 대선 출마를 막으려는 “검찰의 비행”이고 “사법시스템의 무기화”라고 지적했다. 그는 “그런 공격은 망가진 제3세계에서나 일어날 수 있다”며 “슬프게도 미국이 그런 나라들 중의 하나가 돼서 전례 없는 수준으로 부패했다”고 공격했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