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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미국·중남미

크리스마스이브의 기적, 삽 빌려달라고 했더니 집을 빌려줬다

등록 2022-12-26 09:43수정 2022-12-27 13:46

최악 한파 뉴욕주 서부 한국인 관광객들에 집 내준 미국인 부부
24일 미국 뉴욕주 서부 버펄로 주민이 눈을 치우고 있다. 버펄로/EPA 연합뉴스
24일 미국 뉴욕주 서부 버펄로 주민이 눈을 치우고 있다. 버펄로/EPA 연합뉴스

북극 한파가 덮친 미국의 많은 지역들 중에서도 피해가 가장 심각한 뉴욕주 서부에서 타고 가던 차가 멈춘 한국 관광객들이 현지인 부부의 환대로 자칫 악몽이 될 뻔했던 경험을 추억으로 바꿨다.

<뉴욕 타임스>는 25일(현지시각) 나이아가라폭포 관광에 나선 한국인 9명이 뉴욕주 서부를 강타한 눈폭풍에 차가 멈췄으나 인근 주민이 집과 음식을 내줘 위기를 벗어났다고 보도했다.

신문이 전한 사연은 이렇다. 뉴욕주 버펄로 근처의 윌리엄스빌에 사는 치과의사 알렉산더 캄파냐 부부는 수십 년 만의 한파와 눈보라가 닥친다는 기상예보에 따라 냉장고를 채워놓고 집에서 조용히 크리스마스 연휴를 보내려고 했다. 금요일인 23일 오후 2시께, 눈보라가 몰아치면서 급속하게 눈이 쌓이는 가운데 낯선 남성 2명이 현관문을 두드렸다. 관광객 9명이 탄 밴이 배수로에 박혔는데 삽을 빌릴 수 있냐는 것이었다. 이들은 이날 아침 워싱턴에서 출발해 나이아가라폭포를 구경하러 가는 길이었다고 했다. 한국인 관광객들은 이곳으로 오면서 강풍과 창밖에 쌓이는 눈을 걱정스럽게 바라봤는데 마침 캄파냐의 집 근처에서 차가 움직이지 못하게 된 것이다.

캄파냐 부부는 날씨와 도로 상태를 볼 때 “우발적 여관 주인”이 되는 게 맞겠다고 판단했다. 방 3개와 소파, 매트리스를 동원해 운전기사까지 모두 10명의 낯선 손님들을 집으로 들였다. 딸과 함께 여행하는 부부, 신혼여행으로 온 부부도 있었다. 윌리엄스빌과 버펄로를 비롯한 이리 카운티에는 당일 오후 3시30분에 운전 금지령이 내려졌고, 이튿날 아침에는 체감온도가 영하 30도까지 내려갈 정도로 매서운 한파가 몰아쳤다.

이렇게 캄파냐 부부는 크리스마스 이브를 시끌벅적하게 보낼 수 있었다. 마침 미식축구팀 버펄로 빌스가 시카고 베어스를 꺾은 것을 놓고도 얘기했다. 신세를 지게 된 한국인 손님들은 제육볶음과 닭도리탕으로 집주인들을 대접했다. 한국인 관광객들에게는 차가 멈춘 곳 근처에 캄파냐의 집이 있던 것과 함께 이 부부가 한국 음식 마니아라는 점도 행운이었다. 부부는 간장, 고추장, 참기름, 고춧가루, 김치, 전기밥솥 등 한국 음식을 만드는 데 필요한 양념과 도구를 갖고 있었다.

신혼여행으로 미국에 온 최아무개씨는 캄파냐 부부에 대해 “내가 만나본 사람들 중 가장 친절한 사람들”이라고 <뉴욕 타임스>에 말했다. 캄파냐는 “너무 즐거운 시간이었다”며, 예상치 못한 손님들을 맞은 뒤로 한국을 여행하고 싶어졌다고 했다. 손님들은 배수로에서 빼내지 못한 차 대신 다른 차를 구해 25일 뉴욕시로 돌아갔다.

북극 공기가 직접 남하해 미국을 얼어붙게 만든 이번 한파와 눈보라로 이날까지 버펄로와 그 주변에서만 12명, 미국 전체로는 30명 정도가 숨진 것으로 추산된다.

워싱턴/ 이본영 특파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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