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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미국·중남미

미 경찰 폭력에 흑인 사망 파문 “경찰이 아니라 갱을 풀어놨다”

등록 2023-01-29 13:28수정 2023-01-30 02:32

28일 미국 보스턴 시민들이 경찰을 규탄하는 메시지나 희생자 타이어 니컬스의 얼굴 모습이 들어간 손팻말을 들고 시위를 하고 있다. 보스턴/AFP 연합뉴스
28일 미국 보스턴 시민들이 경찰을 규탄하는 메시지나 희생자 타이어 니컬스의 얼굴 모습이 들어간 손팻말을 들고 시위를 하고 있다. 보스턴/AFP 연합뉴스

경찰이 흑인 청년을 마구 때려 목숨을 빼앗은 장면을 담은 동영상이 공개되며 미국 사회가 또다시 경찰 폭력의 심각성에 충격을 받았다. ‘경찰이 아니라 갱(폭력배)을 풀어놨다’는 말이 나올 만큼 잔혹한 폭행 장면에 항의와 개탄이 쏟아지고 있다.

사건이 발생한 테네시주 멤피스시 경찰국은 28일 타이어 니컬스(29)를 때려 숨지게 해 2급 살인과 납치 혐의로 이틀 전 기소가 결정된 흑인 경찰관 5명이 속했던 특수 조직 스콜피온팀을 해체한다고 발표했다. 현지 경찰은 전날만 해도 이 팀이 “업무를 훌륭히 수행해왔다”며 감쌌지만 27일 저녁 동영상 공개로 파문이 커지자 급히 폐지를 결정했다. 스콜피온팀은 멤피스시의 범죄율이 기록을 경신하자 2021년에 창설된 4인 1조로 이뤄진 40명 규모의 경찰 내 특수 조직이다.

동영상 공개 직후 멤피스와 뉴욕·시카고·워싱턴 등 주요 도시들에서는 “경찰 테러를 끝내자”고 요구하는 시민들의 항의 시위가 잇따랐다. 28일에도 니컬스가 폭행당한 장소 근처에서 항의가 이어지고 보스턴·볼티모어·피츠버그·솔트레이크시티 등지로 시위가 확산됐다.

경찰의 보디캠과 주변 가로등 폐회로텔레비전(CCTV)에 담긴 폭행 모습은 경찰 폭행을 통해 시민이 희생된 비슷한 사건들 중 최악이라고 할 만큼 끔찍하다. 미국 언론들은 누리집에 편집한 동영상을 올리면서도 ‘보지 말기를 권고한다’는 안내문을 달았다.

동영상에는 지난 7일 경찰이 난폭 운전이 의심된다는 이유로 니컬스의 차를 세우고는 그를 끌어내 엎드리게 한 뒤 마구 때리는 장면이 나온다. 니컬스는 “난 그냥 집에 가는 중이었다”고 항변하고 “엄마”를 부르며 애원했지만 욕설과 함께 진압봉까지 동원한 폭력이 멈추지 않았다. 경찰은 니컬스 얼굴에 페퍼 스프레이를 뿌리고, 수갑을 채운 뒤에도 머리를 수차례 걷어찼다. 흐느적거리는 그를 2명이 붙잡은 상태에서 다른 1명이 전력을 다 해 거듭 얼굴을 가격하기도 했다. 피를 흘리며 22분간 방치된 니컬스는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사흘 뒤 숨졌다.

운송 업체 페덱스 배달원으로 4살 아들을 둔 니컬스가 쓰러진 장소는 어머니 집에서 약 70m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다. 동영상에 나오는 어떤 경찰관도 동료의 폭행을 말리거나 니컬스를 보호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니컬스 가족의 의뢰를 받은 부검의는 “심각한 폭행에 의한 과다 출혈”이 사인일 수 있다고 추정했다.

미국 여론은 수갑을 차고 저항이 전혀 불가능할 만큼 무력해진 니컬스가 왜 그렇게 잔혹하게 두드려 맞아야 했는지 전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폭행을 즐기기라도 하는 듯한 모습을 지적하며, 이번에 해체된 스콜피온팀의 과격한 업무 방식, 조직 문화, 감독 소홀 등을 지적하는 분석도 나온다.

짐 스트리클런드 시장은 스콜피온팀이 지난해 범죄자 566명을 붙잡았다고 자랑하기도 했지만, 이들이 살인과 강도 등 강력범죄에 대응한다는 구실로 사복을 입고 경찰 표식이 없는 차량을 이용하면서 폭력적이고 강압적인 모습을 보여온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이 유색인종에게 더 공격적이었다는 지적도 있다.

멤피스의 시민운동가 키드런 프랭클린은 스콜피온팀은 ‘본업’이 아닌 차량 단속을 하는 경우도 있는데 차에서 내린 뒤에야 조끼 뒤에 쓴 ‘스콜피온’이라는 글자를 보고 경찰인 줄 짐작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이어 “경찰 내부의 소규모 갱”인 “그들을 길거리에 풀어놓으면 일반 시민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겠는가”라고 <엔비시>(NBC) 방송에 말했다. 니컬스의 가족을 대리하는 변호사 벤 크럼프는 스콜피온팀 같은 조직은 “늑대 떼”로 돌변하기 쉬운 이들이라고 했다.

백악관 등은 2020년 체포당하는 과정에서 7분 이상 목이 눌려 질식사한 흑인 청년 조지 플로이드 사례와 이번 사건 등 경찰이 흑인 목숨을 빼앗는 일이 잇따르는 것에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동영상 공개 직후 성명을 내어 “분노한다”고 했다. 동영상 공개 직전 니컬스 부모와의 통화에서는 1972년 교통사고로 숨진 첫 아내와 딸을 언급하며 가족을 잃은 고통을 얘기하기도 했다. 재임 때부터 경찰 개혁을 주장해온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도 트위터로 “잔인하고 정당성 없는” 폭력을 비난했다.

워싱턴/이본영 특파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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