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중국 겨냥 필리핀 북부 군사기지 사용권 확보”

27일 남중국해에 배치된 미국 항공모함 니미츠호에서 F/A-18E 슈퍼호넷 전투기가 착륙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미군이 필리핀 북부 루손섬에서 주요 군사기지들에 대한 접근권을 확보해 중국에 대한 군사적 견제를 강화하게 됐다고 <워싱턴 포스트>가 30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미국이 필리핀 정부와의 협상을 통해 루손섬 군사기지 2곳에 대한 접근권을 확보하고, 다른 군사기지 사용권을 놓고도 막바지 협상을 하고 있다고 했다. 합의 결과는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이 한국 방문을 마치고 필리핀에 들를 때 발표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미국이 루손섬에서 주요 군사기지들에 대한 접근권을 확보한 것은 중국 견제를 위한 전략적 의미를 띠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루손섬은 대만에서 300여㎞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인근 남중국해는 물론 대만해협 유사시에도 군사력을 신속히 투사할 수 있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미국 식민지였던 필리핀은 독립 5년 뒤인 1951년 미국과 군사동맹 조약을 체결했고, 클라크 공군기지와 수빅 해군기지에 대규모 미국 군사력이 배치됐다. 하지만 1991년 필리핀 상원이 미군 주둔은 주권 침해라고 선언하고 이듬해 주둔 협정이 종료되면서 미군이 물러났다. 2014년에는 재배치 협정을 맺어, 미군은 필리핀의 4개 공군기지와 1개 육군기지에 순환 배치 형식으로 주둔해왔다. 미국-필리핀의 새 합의는 이를 더욱 확장하는 것이다.

한 필리핀 관리는 미국과의 안보 협력 강화는 “특정국을 겨냥하는 게 아니다”라고 <워싱턴 포스트>에 말했다. 하지만 다른 관리는 여러 나라로부터 위협이 증가하고 긴장이 더욱 고조될 것으로 보이다며, 중국 견제 의도를 내비쳤다.

이번 합의에는 독재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전 대통령의 아들로 지난해 6월 취임한 마르코스 주니어 대통령의 친미 기조가 반영됐다고 볼 수 있다. 그의 전임인 로드리고 두테르테 전 대통령은 미군 순환 배치 협정을 종료할 수 있다며 미국을 곤혹스럽게 만든 바 있다. 마르코스 주니어 대통령은 최근 다보스포럼에서 “대만해협 양안의 긴장에 관해서라면 우리는 최전선에 있다”고 했다. 또 남중국해 문제가 “우리를 잠들지 못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필리핀은 자국의 배타적경제수역(EEZ) 안에 있지만 중국이 실효 지배하는 스카버러 암초(중국명 황옌다오) 등의 영유권과 남중국해 어업권을 놓고 중국과 긴장 관계를 맺어왔다. 지난해 11월에는 중국 해안경비대 함정이 필리핀이 영유하는 섬 근처에서 중국 로켓 잔해를 수거하던 필리핀 함정으로부터 강제로 이를 빼앗는 일이 발생했다. 지난주에는 중국 선박들이 필리핀이 어업권을 보유한 암초 주변에서 필리핀 어선들을 몰아냈다.

마르코스 주니어 대통령은 1월 초 중국을 방문해 남중국해 문제를 제기했다. 당시 중국 외교부는 양국이 문제를 “우호적으로 해결”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마르코스 주니어 대통령은 이후 다보스포럼 연설에서 “세상이 바뀌었다”며 “우리는 지금 모든 세력이 남중국해 주변으로 몰려드는 상황에서 살고 있다”고 했다.

워싱턴/ 이본영 특파원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