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인근 대서양 상공에서 미사일에 맞은 중국발 기구의 잔해가 추락하고 있다. 그 아래로 작전에 동원된 전투기가 날고 있다. AP 연합뉴스
중국의 ‘정찰용 기구’가 미국 본토를 훑고 지나간 직후 격추된 가운데 중국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때도 미국 상공에 기구를 보냈다고 미국 국방부가 밝혔다. 중국 기구에 대한 대응을 놓고 미국 정치권에서 책임 공방도 달아오르고 있다.
미국 국방부 고위 관계자는 4일(현지시각) 브리핑에서 “중국 정부의 정찰 기구는 전임 행정부 때 적어도 세 차례 미국 본토 상공을 잠시 지나갔고, 현 행정부 초기에도 한 차례 그런 일이 있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네 차례는 미국 상공에 잠시 머물다 빠져나간 경우로, 지난달 28일 알류샨열도 상공으로 진입한 기구가 알래스카와 캐나다를 거친 뒤 미국 본토를 대각선으로 가로지른 것과는 다른 양상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워싱턴 포스트>는 국방부가 중국의 정찰 기구가 미국 본토의 텍사스주와 플로리다주 주변, 태평양의 하와이와 괌 상공에도 출몰한 사실이 있다고 이날 의회에 보고했다고 전했다. 하와이와 괌 상공에 중국 기구가 나타났다는 사실은 이미 알려졌으나, 미국 본토 상공에서 과거에도 중국의 정찰용 기구가 포착됐다는 것은 이번에 처음 공개됐다. 플로리다주 주변 상공에서는 중국 기구가 두 번 관찰됐다고 한다.
이런 설명은 중국 기구의 영공 진입을 신속히 공개하거나 조기에 격추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 국방부는 2일 <엔비시>(NBC) 방송이 몬태나주 상공에서 중국 기구가 발견됐다고 보도한 뒤에야 기구를 추적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표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자신의 임기 때 중국 기구가 미국 상공을 침범했다는 설명을 전면 부인했다. 그는 5일 자신이 운영하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중국 기구와 관련된 상황은 소름 끼치는 아프가니스탄 (철수) 쇼처럼 수치스럽다”며 “그런 일은 절대 없었다. 순전한 허위 정보다”라고 주장했다.
공화당은 바이든 행정부의 ‘안보 무능’ 주장을 펴며 이번 사건을 쟁점화하고 나섰다. 공화당은 기구가 내륙에 있을 때는 민간의 피해 가능성 때문에 격추할 수 없었다는 미군 쪽 설명에도 불구하고 “직무 태만”에 대해 조사하겠다는 입장이다. 최초 진입으로부터 1주일 동안 손을 놓고 있었다는 비판이다.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는 “바이든 행정부는 외교·안보 정책과 관련해서는 언제나 그렇듯 처음에는 너무 우유부단하게, 그 다음에는 너무 느리게 반응한다”며 “중국이 우리 영공을 웃음거리로 만들게 놔둬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4일 기자들과 만나 자신이 1일 “격추를 지시했다”고 여러 차례 거듭 강조했다.
공화당이 기구 문제를 정치 쟁점화하면서, 이 문제가 미-중 관계를 더욱 냉각시킬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척 슈머 상원 민주당 원내대표는 다음주에 중국 기구 문제를 다룰 상원 전체 차원의 청문회가 열린다고 밝혔다. 그는 또 행정부가 중국의 “노골적 행위들”에 대응하는 조처를 고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런 가운데 사우스캐롤라이나주 해안가에서 미국 전투기에 격추당한 기구가 정확히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여전히 미궁에 빠진 상태다. 미국 국방부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격납고가 있는 몬태나주 공군기지 상공을 지났다는 점 등을 근거로 군사 목적의 정찰 활동을 한 게 틀림없다고 설명하고 있다. 해군 잠수사들을 동원해 바닷속에 가라앉은 기구의 잔해를 수거하고 있는 미군 당국은 이를 정밀 분석하면 기구의 성능과 정찰 활동 실태 파악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뉴욕 타임스>는 정찰위성으로 지상을 감시하는 시대에 기구는 별 의미가 없어 보여도 위성이 잡아내지 못하는 통신을 감청하는 데 유용할 수 있다고 했다.
워싱턴/ 이본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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