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스위스 취리히에 있는 크레디트스위스은행 본사 건물에 회사 로고가 표현돼 있다. 취리히/AFP 연합뉴스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으로 촉발된 미국과 유럽 은행권 위기 확산 여부가 크레디트스위스은행(크레디스위스) 매각 논의와 연방준비제도(Fed)의 기준금리 결정과 맞물리며 이번주에 중대 고비를 맞을 것으로 보인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유동성 부족 등 부실 문제가 불거진 스위스 2위 은행 크레디스위스를 1위 은행 유비에스(UBS)에 매각하기 위해 스위스 정부가 비상 조처까지 강구하고 있다고 19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유비에스 은행은 규정에 따라 합병 문제에 대해 주주들에게 6주의 협의 기간을 줘야 하지만 이번에는 이를 적용하지 않는 계획이 추진되고 있다고 이 문제를 아는 관계자들을 인용해 보도했다.
스위스 정부가 비상 조처까지 고려하는 것은 크레디스위스은행 상황을 조기에 해결하지 않으면 금융시장 전반에 걷잡을 수 없는 혼란이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15일 크레디스위스은행 주가가 한때 30% 이상 하락하자 스위스 중앙은행은 500억 스위스프랑(약 70조6천억원)을 공급하겠다고 밝혔지만 이 은행 주가는 17일 다시 7% 급락했다. 이 은행의 최근 일주일간 예금 인출액은 일평균 100억 스위스프랑이 넘었다. 스위스 당국은 대규모 유동성 공급에도 불길이 안 잡히자 유비에스은행에 손을 내밀어, 주말 동안 매각 협상이 집중적으로 진행됐다. 유비에스은행이 크레디스위스은행의 사업 부문을 모두 인수할지 또는 일부만 인수할지가 주요 쟁점이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미국 금융 당국도 크레디스위스은행 상황을 주시하며 매각 문제에 간여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신문은 미국 당국은 스위스 1·2위 은행이 미국에서도 영업하는데다, 세계적 투자은행인 크레디스위스은행이 무너지면 파장이 매우 클 것이라고 본다고 전했다. 미국 쪽은 지난 10일 실리콘밸리은행 파산으로 시작한 위기가 크레디스위스은행을 무너뜨린 뒤 역수입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실리콘밸리은행과 시그니처은행 파산 이후 붕괴 가능성이 떠오른 미국 퍼스트리퍼블릭은행 주가는 17일에도 33% 폭락했다. 전날 제이피모건체이스·시티그룹·골드만삭스 등 대형 은행 11곳이 이 은행에 300억달러를 공급했지만 주식 투매를 막지 못했다.
은행권 위기를 잠재우려는 특단의 조처가 잇따르는데도 금융시장 불안이 곧바로 되살아나는 가운데 22일(현지시각)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연방준비제도(Fed)의 고민도 이어지고 있다. 연준은 지난 12일 재무부, 연방예금보험공사와 함께 실리콘밸리은행과 시그니처은행 예금주들에게 기존 보장 한도 25만달러(약 3억2700만원)가 넘는 예금까지 전액 보장한다는 등 전례 없는 대책을 내놨지만 의도가 완전히 먹히지는 않고 있다.
실리콘밸리은행 붕괴 직전까지는 연준이 물가를 잡으려고 4.5~4.75%인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올리는 ‘빅 스텝’을 밟을 것이라는 전망이 확산됐다. 은행권 위기 발생 뒤로는 동결이나 0.25%포인트 인상 중에 선택할 것이라는 예측이 많다. 급격한 금리 인상으로 은행들이 보유한 채권 값이 떨어진 게 위기의 주요인으로 지적되기 때문에 기준금리 인상을 멈춰야 한다는 목소리도 크다. 하지만 유럽중앙은행의 경우 지난 16일 기준금리를 3%에서 3.5%로 0.5%포인트 올렸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 총재는 “시장의 긴장 상황을 면밀히 살피면서 필요한 대응을 할 준비가 돼 있다”고 했다. 연준은 이번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를 마칠 때는 기준금리뿐 아니라 향후 기준금리나 경제성장률 전망치도 함께 밝혀야 한다.
워싱턴/이본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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