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9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등과 화상으로 연연결된 가운데 ‘민주주의 정상회의’ 본회의 세션을 주재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제2회 ‘민주주의 정상회의’에서 “세계 민주주의가 강해지고 있다”며 참가국들에게 권위주의에 맞서자고 촉구했다. 그러나 핵심 우방인 이스라엘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사법 개혁’ 문제로 바이든 대통령과도 공개적 갈등을 빚으면서 잔칫상에 재를 뿌렸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29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등 8개국 지도자를 모아 주재한 화상회의 세션에서 민주주의 강화는 “우리 시대의 본질적 도전”이라고 말했다. 그는 최근까지 민주주의가 계속 후퇴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면서도 “세계 민주주의는 약해지는 게 아니라 강해지고, 권위주의는 강해지는 게 아니라 약해지고 있다”고 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러시아와의 휴전 협상 가능성을 놓고 “우리는 악과 타협하는 게 자유에 어떤 도움이 될 수 있다는 환상을 버려야 한다”며 “민주주의의 적들은 패배할 것”이라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민주주의 강화와 중국·러시아 등의 권위주의에 대한 견제를 내걸며 출범시킨 이 정상회의는 2021년 12월 첫 회 때 110여개국에 이어 이번에는 121개국으로 규모가 확대됐다. 28~30일에 주로 화상으로 하는 회의는 한국·코스타리카·네덜란드·잠비아 등 4개국도 공동 주최국으로 참여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이 자유 선거와 독립 언론 지원 등을 위해 위해 6억9천만달러(약 8990억원)를 내놓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그는 “제3차 정상회의를 개최할 한국에 감사한다”고도 했다.
이 정상회의는 첫 회부터 민주주의를 퇴행시키는 지도자들도 초청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번에는 미국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동맹이지만 권위주의가 강화되고 있는 튀르키예와 헝가리 정상 등이 초청받지 못했다.
그런데 대법원 판결을 의회가 무효화할 수 있다는 내용 등을 담은 이스라엘의 ‘사법 개혁’에 대한 논란이 커지면서 정상회의 분위기가 더 어수선해졌다.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바이든 대통령이 주재한 세션에는 참가하지 않았지만 개별 연설에서 주장을 굽히지 않는 모습이었다. 거센 저항에 27일 ‘사법 개혁’ 추진을 보류한다고 밝힌 그는 바이든 대통령을 “40년 친구”라고 부르면서 “가끔 이견이 있지만” 양국 동맹은 흔들리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강력한 사법부로부터 추를 옮겨놓는 과정에서 사법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하지만 “행정부와 입법부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며 ‘사법 개혁’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은 전날 이스라엘 상황에 대해 “계속 그런 길로 갈 수는 없다”면서 네타냐후 총리를 향해 “진정한 타협”을 요구했다. 이에 네타냐후 총리는 새벽에 트위터에 올린 성명으로 “이스라엘은 가장 친한 친구들을 비롯한 외부의 압력이 아니라 이스라엘인들의 의지에 따라 스스로 결정을 내리는 주권국”이라고 반박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밤에는 이스라엘이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며, 네타냐후 총리가 “거기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했다.
미-이스라엘 정상들의 이례적 공방 속에 열린 정상회의에 대해 <폴리티코>는 “바이든이 좋아하는 중동의 동맹국이 그의 민주주의 파티를 망치고 있다”고 했다.
워싱턴/이본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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