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25일 플로리다주 팜비치 공항에 도착하고 있다. 팜비치/A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성관계 입막음용 돈을 주고 이를 장부에 허위 기재한 혐의로 기소됐다. 전직 미국 대통령들 중 첫 기소 사례로, 그 지지자들의 반발 정도와 함께 2024년 대선에 미칠 영향도 주목된다.
뉴욕 맨해튼 지방검찰청 대배심은 30일(현지시각) 트럼프 전 대통령을 기소하기로 결정했다. 일반 시민 23명으로 이뤄진 대배심은 검찰 수사 내용을 토대로 찬반 투표를 해 이런 결론을 내렸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2016년 대선 직전 포르노 배우 스토미 대니얼스에게 13만달러(약 1억6800만원)를 주고 2006년에 맺은 성관계에 대한 입막음을 시도하고 이를 장부에 허위 기재한 혐의를 받는다. 검찰은 그가 ‘집사 변호사’ 마이클 코언이 먼저 돈을 주게 한 뒤 회삿돈으로 변제해주며 소송비용이라고 기록하게 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이 돈을 선거 관련 기부금으로 보고 선거법 위반 혐의도 적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엔엔>(CNN)은 내용은 파악이 안 되지만 혐의 사실이 30여가지라고 전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 쪽은 4일에 검찰과 법원에 나가겠다고 밝혔다. 기소된 피고인은 검찰에서 지문 날인과 사진 촬영을 한다. 이어 법원으로 이동해 혐의 사실을 통지 받고 그것에 대한 인정 여부를 밝히는 기소 인부 절차를 밟게 된다. 미국 언론들은 일반 피고인들처럼 수갑을 차고 외부에 모습을 드러내거나 구금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기소 인부 절차 뒤 불구속 재판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대니얼스와의 성관계 자체를 부인하는 트럼프 전 대통령은 성명을 내어 자신을 기소한 것은 “정치적 박해”이며 “역사상 가장 높은 수준의 선거 개입”이라고 주장했다. 또 민주당이 “완벽하게 무고한 사람”을 기소했다며 “우리 나라 역사상 이런 일은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기업 활동, 2020년 대선 결과 조작 시도, 기밀 자료 유출, 의사당 난동 사건 선동을 이유로도 수사를 받고 있어 추가 기소 가능성도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 기소는 그가 공화당의 2024년 대선 유력 주자이고, 2021년 1월6일 대선 결과에 불복하는 지지자들의 의사당 난동을 사주한 전력 때문에 정치·사회적 긴장감을 높이고 있다. 그는 가상 대결 여론조사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과 호각세를 보이고 있다. 중범죄 혐의가 적용됐기 때문에 유죄가 인정되면 징역형의 실형이 선고될 수도 있지만 투옥된 사람의 선거 출마를 금지하는 규정은 없다. 그는 기소를 정치적 홍보와 지지층 결집 수단으로 이용할 것으로 보인다. 친트럼프 인사인 케빈 매카시 하원의장은 트위터를 통해 “미국인들은 이 불의에 참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기소 움직임에 맞서 지난 18일 소셜미디어에 “전직 미국 대통령이 다음주 화요일에 체포당할 것이다. 항의하라. 우리 나라를 되찾자”라는 글을 띄우기도 했다. 또 소셜미디어를 통해 자신이 기소되면 “죽음과 파괴”가 뒤따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수사를 이끈 앨빈 브래그 검사장은 트럼프 전 대통령 추종자로 추정되는 이한테 살해 협박 우편물을 받았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출석이 예상되는 맨해튼 법원에는 난동에 대비해 바리케이드가 설치된 상태다. 뉴욕 경찰은 기소 결정 직후 경계를 강화했다고 밝혔다.
<뉴욕 타임스>는 200년 이상의 역사에서 여러 스캔들에도 불구하고 미국 대통령은 현직일 때는 물론 백악관을 떠난 뒤에도 법정에 서지 않았지만 이제 “금기가 깨졌다”고 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판과 대선을 둘러싼 극심한 대결은 미국 민주주의를 또다시 시험에 들게 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워싱턴/이본영 특파원
ebo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