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프리 엡스타인과 그의 연인이자 공범인 길레인 맥스웰.
미성년자 수십 명을 성적으로 착취한 미국 억만장자 금융인 제프리 엡스타인이 윌리엄 번스 중앙정보국(CIA) 국장이나 석학인 노엄 촘스키 매사추세츠공대(MIT) 명예교수 등도 만나온 것으로 드러났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엡스타인의 일정표와 이메일 수천 쪽을 입수해 확인한 결과, 그가 어울린 유명 인사들이 지금까지 알려진 것보다 훨씬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고 30일 보도했다. 엡스타인은 2019년 구속된 상태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번스 국장은 기록상 국무부 부장관 때인 2014년 엡스타인과 세 차례 만남을 약속한 것으로 나타났다. 첫 만남은 워싱턴, 이후는 뉴욕 맨해튼에 있는 엡스타인의 타운하우스에서 약속이 잡혔다. 중앙정보국 대변인은 “번스 국장이 국무부에서 퇴직을 준비하던 시기에 금융 서비스 전문가로 소개받은 엡스타인을 만나 자신이 민간 영역으로 가는 문제에 관해 일반적 조언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번스 국장은 일정에 있는 세 차례 중 한 차례 만남만 기억한다고 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때 백악관 법률고문이었던 캐스린 러믈러는 퇴직 직후부터 시작해 엡스타인을 30차례 이상 만났다. 지금은 투자은행 골드만삭스의 법률고문인 러믈러는 엡스타인의 2015년 파리 여행에 동행하고, 2017년 카리브해에 있는 그의 개인 섬에도 함께 가는 것으로 일정표에 기록돼 있다. 골드만삭스 대변인은 러믈러가 로펌에서 일할 때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등 잠재적 고객을 소개받으면서 엡스타인을 알고 지냈지만 함께 여행하지는 않았다고 했다. 골드만삭스 대변인은 러믈러가 “엡스타인을 알고 지낸 것을 후회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전했다.
촘스키 명예교수는 에후드 바라크 전 이스라엘 총리 등과 함께 엡스타인을 만났다. 촘스키 명예교수는 엡스타인의 집 등에서 “가끔 그를 만났다”며,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정책 등에 관해 대화했다고 밝혔다. 바라크 전 총리도 엡스타인 집의 단골 손님이었다.
다른 기업인들과 대학 총장 등도 엡스타인과 자주 만났다. 이들이 엡스타인을 만난 것은 그가 2006년 14살짜리를 비롯해 미성년자 여럿을 성적으로 착취한 것으로 드러나 13개월간 복역하고 성범죄자로 등록된 뒤라는 점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당시 이 사건이 문제가 되자 정치인들은 그에게 받은 기부금을 돌려주기도 했다.
엡스타인은 석방 뒤로도 미성년자 수십 명을 “모델을 시켜주겠다”는 식으로 꾀어 성적 노리개로 삼은 것으로 드러나 2019년에 다시 체포됐다. 미성년자일 때 영국 앤드루 왕자와의 성관계를 강요당했다는 폭로가 나오는 등, 엡스타인이 여성들을 성접대에 동원한 정황이 불거지기도 했다. 그는 미성년자들에게 돈을 주고 친구들을 데려오게 만들기도 했다. 엡스타인의 뉴욕 집을 방문한 적 있는 한 인류학자는 젊은 여성 6명을 목격했다고 말했다. 엡스타인의 연인으로 그의 범죄를 도운 길레인 맥스웰은 지난해 징역 20년을 선고받았다.
앞서 빌 클린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엡스타인의 자가용 비행기를 이용했고, 게이츠도 그와 친분이 상당한 것으로 드러났다. 엡스타인과 어울린 앤드루 왕자는 피해를 주장하는 여성에게 소송을 당하자 거액의 합의금으로 무마했다.
워싱턴/이본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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