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왼쪽 셋째)과 왕이 중국공산당 중앙외사판공실 주임(오른쪽 넷째)이 10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만나 양국 간 현안을 논의하고 있다. 신화 연합뉴스
미국과 중국이 2월에 발생한 중국 기구의 미국 영공 침범 이후 더 첨예하게 갈등해온 가운데 양국 외교·안보 사령탑이 전격 회동해 주요 현안들을 논의했다. 양쪽은 기구 사건이 더 이상 관계의 걸림돌로 작용해서는 안 된다는 점에 동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백악관은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이 10~11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왕이 중국공산당 중앙외사판공실 주임을 만나 “양국 관계, 세계적·지역적 문제들, 우크라이나 전쟁, 대만해협 양안 문제 등 핵심적 문제들에 대해 솔직하고, 실질적이고, 건설적인 논의를 했다”고 밝혔다.
백악관은 2월로 예정됐던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의 방중 취소 이후 이뤄진 이번 고위급 회동에 대해 “소통 라인을 유지하고 경쟁을 책임 있게 관리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두 나라가 지난해 11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계기로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만난 조 바이든 대통령과 시진핑 국가주석의 약속대로 전략적 소통 채널을 유지하기로 합의했다고 전했다.
미국 행정부 고위 관계자는 회담의 구체적인 내용과 관련해 두 사람이 8시간에 걸쳐 장시간 회담했다고 전했다. 그는 설리번 보좌관이 미국은 ‘하나의 중국’ 정책을 지지하며, 대만해협에서 일방적 현상 변경에 반대하며, 미-중 경쟁이 충돌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고 밝혔다. 또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가 전쟁을 끝내도록 중국이 “건설적 관여”를 하라고 촉구했으며, 중국에 억류된 미국인들 문제도 거론했다고 했다. 중국에는 미국인 3명이 구금된 상태로, 마약 거래 혐의로 체포된 이는 사형을 선고받았다. 설리번 보좌관은 미국에서 심각한 문제로 떠오른 마약성 진통제 펜타닐 문제도 제기했다고 한다. 펜타닐은 중국산 화학 물질이 원료다.
중국 <신화통신>은 설리번 보좌관과 왕 주임이 “중-미 관계의 장애물을 제거하고, 관계 하강을 중단시키면서 관계를 안정화하기 위해 솔직하고, 심층적이며, 실질적이고, 건설적인 논의를 했다”고 전했다. 또 “왕 주임은 대만 문제에 대해 중국의 엄정한 입장을 전면적으로 설명했고, 아시아·태평양 정세, 우크라이나 등 함께 관심을 지닌 국제·지역 문제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며 “양쪽은 전략적 소통 채널을 계속 잘 사용하는 데 동의했다”고 했다.
미·중이 회담에 대해 더 구체적인 내용을 밝히지는 않았으나, 이틀에 걸쳐 비교적 긴 시간 동안 만난 점으로 미뤄 심도 있는 논의가 진행됐을 것으로 보인다. 외교부장을 맡아온 왕 주임이 올해 초 외교를 총괄하는 공산당 중앙외사판공실 주임으로 승진한 이래 양국 외교·안보 사령탑이 직접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설리번 보좌관이 커트 캠벨 국가안보회의 인도태평양조정관과 대니얼 크리튼브링크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 등을 대동하고, 중국 쪽도 다른 고위급 인사들이 동석한 점도 미-중의 본격적인 대화와 소통 재개 의지를 보여준다.
나아가 양쪽은 중국 기구 사건이 더 이상 관계의 장애물이 돼서는 안 된다는 점에 의견이 일치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 행정부 고위 관계자는 양쪽은 기구 사건은 “유감스러운” 것이지만 소통 채널을 복원하기로 합의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바이든 행정부는 “이 문제를 넘어 움직이기를 기대한다”며 “백악관은 이틀에 걸친 빈 회동이 양국 사이에 더 많은 소통의 길을 열기를 바란다”고 했다. 또 회동은 양쪽의 필요에 의해 “매우 신속히” 성사됐다고 했다.
워싱턴/이본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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