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정부가 미국 반도체 업체 마이크론의 제품에 중대한 보안 문제가 있다며 구매 중지 지시를 내리자 미국이 동맹들과 함께 대응하겠다며 반발했다. 미국이 동맹이자 메모리 반도체 분야의 최강국인 한국에 중국의 판매 확대 요구에 응하지 말라고 요구해오면, 한국은 미-중 경쟁의 한복판으로 끌려들게 된다.
<로이터> 통신은 21일(현지시각) 미국 상무부가 이날 중국 인터넷안보심사판공실의 안보 심사 결과 발표에 대해 “중국의 메모리칩 시장 왜곡”에 대해 동맹들과 함께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전했다. 미국 상무부 대변인은 통신에 “우리는 실제적 근거가 없는 규제에 단호히 반대한다”며 “다른 미국 기업들에 대한 압수수색과 함께 이번 행동은 시장을 개방하고 투명한 규제 체제를 약속한다는 (중국의) 주장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앞서 중국 당국은 미국 컨설팅 업체 캡비전과 베인앤드컴퍼니의 베이징과 상하이 사무소 등을 압수수색해 미국이 크게 반발했다.
미국은 중국이 중요 정보 인프라 설비 사업자에게 마이크론 제품의 구입을 금지한 이날 조처가 주요 7개국(G7)의 정상회의 마지막 날에 공개된 것에 대해 자신에 대한 뚜렷한 ‘보복 의사’를 담은 것이라 보고 있다. 반도체 경쟁을 다룬 책 <칩 워>의 저자인 크리스 밀러 터프츠대 교수는 통신에 “중국이 주요 7개국 정상회의라는 기회를 이용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라며 “주요 미국 반도체 업체에 보복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조 바이든 대통령이 이번 회의에서 “(중국과의 관계에서 오는) 위험을 제거”하고 “경제적 강압”에 맞서겠다고 밝힌 점을 거론하며 “이번 사례는 주요 7개국의 노력에 대한 초기 시험이 될 것”이라고 했다. 미국 연방수사국(FBI) 방첩 담당자로 베이징에 근무했던 홀든 트리플릿도 “이번 조처는 미국의 반도체 수출 통제에 대한 보복이 목적”이라며 “어떤 기업이든 순전하고 단순한 정치적 행동의 다음 본보기 사례가 될 수 있다”고 <블룸버그> 통신에 말했다.
하지만 마이크론이 당장 얼마나 큰 타격을 받을지는 분명치 않다. 마이크론은 전체 매출의 16%인 52억달러(약 6조8676억원)만을 중국·홍콩 판매로 얻는다. 나아가 중국의 중요 정보 인프라에 쓰이는 서버용보다 중국 내 외국계 기업들에 대한 판매 비중이 높다. 미국 투자은행 제프리스는 “마이크론의 디(D)램과 낸드 제품은 서버에 쓰는 경우가 적어 통신사나 중국 정부에 대한 납품은 별로 없는 것으로 보인다”며 “마이크론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제한적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물론 중국이 상황에 따라 퀄컴·브로드컴·인텔 등 다른 미국 업체로 보복 대상을 확대할 가능성도 있다.
관심을 모으는 것은 미국 상무부가 ‘동맹들과의 공동 대응’을 언급한 점이다. 주요 7개국은 20일 발표한 공동성명에서 ‘경제적 강압에 대한 조정 플랫폼’을 만든다고 했다. 중국이 정치적 의도로 수출입 등에서 제재를 가하는 것에 함께 맞서겠다는 것이다. 또 지난달 23일엔 마이크론이 제재를 받으면 한국 업체들이 중국이 필요로 하는 반도체 부족분을 메우지 않게 해달라고 한국 정부에 요구했다는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 보도가 나왔다. 제재가 현실화되면 한국에 중국의 요청에 협조하지 말라고 압력을 가하며 플랫폼을 가동하려 할 가능성이 있다.
워싱턴/이본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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