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래스카 국립북극야생동물보호구역에 사는 북극곰들. 로이터 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알래스카의 광범위한 지역에서 석유와 천연가스 개발을 금지하고 기존 채굴 허가도 취소하는 역대 최대 규모의 국유지 환경 보호 정책을 발표했다.
미국 내무부는 6일 ‘알래스카 국가석유비축지’의 약 40%에 해당하는 5만2600㎢ 지역에서 석유·천연가스 개발을 금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알래스카 국가석유비축지는 북극해에 면한 석유·천연가스 매장 지역으로 개발이 금지되는 땅은 남한 면적의 절반가량에 해당한다.
미국 내무부는 또 알래스카 북동쪽 국립북극야생동물보호구역에서 7건의 석유·천연가스 채굴 허가를 취소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환경단체 등의 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집권 말기에 개발 허가를 내준 것을 무효화한 조처다. 바이든 대통령은 2021년 초 취임 직후 개발 허가 집행을 보류하고 적법성 여부를 검토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성명을 내어 “알래스카는 미국의 가장 경이로운 자연 명승지이고 문화적으로 중요한 지역”이라며 “기후 위기에 의한 북극 지역 온난화가 다른 곳들의 두 배 속도로 진행되는 상황에서 모든 세대를 위해 이 귀중한 지역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밝혔다.
이번 발표는 연방정부 소유지를 석유·천연가스 개발로부터 보호하는 역대 최대 조처다. 국가석유비축지뿐 아니라 국립북극야생동물보호구역에도 110억배럴로 추정되는 석유가 매장돼 있어 석유업계 등은 꾸준히 개발을 요구해 왔다. 약 7만8천㎢에 달하는 이곳은 북극곰·회색곰·흰올빼미·무스·순록 등의 주요 서식지다.
기후 위기 대응과 관련해 알래스카는 뜨거운 논쟁 대상이다. 풍부한 화석연료가 매장돼 있는 동시에 지구 온난화에 의한 피해도 뚜렷한 곳이기 때문이다. 바이든 행정부와 민주당은 고유가 대처와 기후변화 대응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고 하는 반면 공화당은 화석연료 생산 증대를 요구하고 있다. 공화당은 환경 영향 평가를 간소화해 석유·천연가스 생산을 늘리도록 하는 법안을 하원에서 통과시키기도 했다.
이번 조처는 바이든 행정부가 앞서 허가한 알래스카 석유 개발에 대한 비판을 무마하려는 의도도 있어 보인다. 그는 대선 때 “더 이상 채굴을 허가하지 않겠다”며 강도 높은 규제를 약속했다. 기후 위기에 대응한다며 전기차 생산을 늘리는 정책도 폈다. 하지만 지난 3월 알래스카 국가석유비축지 안에서 석유 6억배럴을 뽑아내기 위한 코노코필립스의 ‘윌로 프로젝트’를 인가했다. 이 사업은 취소되지 않았다.
재선을 노리는 바이든 대통령으로선 공약 위반 논란을 희석하고 기후변화에 민감한 유권자들을 달래기 위한 행동이 필요했던 셈이다. 더글러스 브링클리 라이스대 교수는 미국 정부가 이 조처를 취한 이유에 대해 “바이든 대통령은 환경단체들이 윌로 프로젝트에 얼마나 분노하는지를 보고 놀랐다”고 뉴욕타임스에 말했다.
워싱턴/이본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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