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하원의장직 도전 의사를 밝힌 스티브 스컬리스 공화당 원내대표(왼쪽)와 짐 조던 법사위원장.
케빈 매카시 의장의 해임으로 미국 하원이 마비 상태에 빠진 가운데 차기 의장 선출이 극우 대 극우 인사의 대결이 될 가능성이 떠오르고 있다.
매카시 의장이 공화당 초강경파와 민주당 의원들의 합세로 해임당한 이튿날인 4일까지 의장직 도전을 선언한 인물은 공화당의 스티브 스컬리스 원내대표와 짐 조던 법사위원장이다. 다른 후보들의 도전 가능성도 거론되나 차기 의장 선출은 적극적인 의사를 밝힌 둘의 대결 구도가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오하이오주에 지역구가 있는 조던 위원장은 “난 보수 진영과 우리 당 의원들을 단결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루이지애나주에 지역구를 둔 스컬리스 원내대표는 동료 의원들에게 보낸 서한에서 하원 2인자 경험을 강조하면서 자신은 “다른 사람들은 불가능하다고 여긴 분야에서 합의를 이끌어내는” 능력을 발휘했다고 주장했다. 공화당 의원들은 다음주에 출마자들의 견해를 들은 뒤 의장 후보를 선출할 예정이다. 이후 하원 전체회의에서 표결로 차기 의장을 뽑는다.
조던 위원장과 스컬리스 원내대표는 둘 다 극우로 분류할 수 있다. 누가 되든 미국 현대 정치사에서 어느 때보다 극우적인 인물이 하원을 이끌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진 것이다. 이들은 2020년 대선을 부정선거라고 주장하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동조해 의회의 선거인단 표결 인증 때 반대표를 던진 이력이 있다.
조던 위원장은 민주당 의원들과 합세해 매카시 의장을 낙마시킨 공화당 의원 8명이 속한 강경파 모임 ‘프리덤 코커스’의 창립멤버다. 대학교 레슬링 감독 출신으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표적인 측근이다. 이민, 임신중지, 성소수자, 외교 등의 문제에서 극우적 태도를 보여왔다. 그가 초대 의장을 맡은 프리덤 코커스의 전신인 티파티는 2015년에 같은 공화당 소속인 존 베이너 하원의장의 해임을 추진해 자진 사임하도록 만든 바 있다. 매카시 의장 축출은 충분히 전투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공화당 강경파가 같은 당 소속 의장을 쫓아낸 점에서 2015년과 닮았다.
스컬리스 원내대표도 만만찮은 극우 성향을 보여온 인물이다. 그는 2002년에 백인 우월주의자 집회에서 연설해 논란을 일으켰다. 또 폭력적 백인 우월주의 집단인 큐클럭스클랜(KKK) 지도자 데이비드 듀크를 추종하며 그를 자신과 비유하기도 했다. 매카시 의장 해임안을 제출한 맷 게이츠 공화당 의원은 스컬리스 원내대표에 대해 “경이로운 하원의장이 될 것”이라며 지지 의사를 밝혔다.
결국 둘 중 하나가 하원 의사봉을 잡게 되면 미국 정치는 더 우경화되고 대립이 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또 매카시 전 의장보다 비타협적인 인사가 하원을 이끈다면 당장 다음달 중순 안에 처리해야 하는 12개 예산 법안의 통과 여부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진다. 하원이 공화당 강경파 요구대로 예산을 대폭 삭감하더라도 상원 다수당인 민주당이 동의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때까지 상·하원이 예산 법안에 합의하지 못하면 연방정부는 셧다운(부분 업무 정지)에 빠진다. 공화당 내분 탓에 다음주에 의장을 선출하지 못해 의사 일정 중단 사태가 장기화할 수도 있다. 이런 상황을 놓고 조 바이든 대통령은 워싱턴의 “유독한 환경”을 종식시켜야 한다며 하원의 조기 정상화를 촉구했다.
워싱턴/이본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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