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가자지구에서 한 남성이 부상당한 아이를 안고 구급차로 달려가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미국이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한테 반격을 가하는 이스라엘에 지원하는 무기에 “조건을 달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스라엘의 최대 후원국 미국이 무력 사용의 비례성을 주장하는 유럽 쪽과 다른 입장을 취하면서 가자지구에서 대규모 인명 살상 우려가 커지고 있다.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은 12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국방장관 회의 뒤 기자회견에서 ‘민간인 피해를 줄이기 위해 미국이 제공하는 무기에 조건을 부과하냐’는 질문에 “어떤 조건도 달지 않는다”고 했다.
또 “이스라엘군은 전문적 지도부가 이끄는 전문적 군대”라며 “작전을 수행하면서 옳은 일을 하기를 희망하고 그럴 것으로 예상한다”고 했다. 그는 이날 이스라엘을 방문한 토니 블레어 국무장관에 이어 13일 이스라엘을 찾아 군사 지원과 하마스에 대한 작전을 논의한다.
오스틴 장관은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이 무력 사용의 비례성을 요구한 것에 대해 “그가 이스라엘인들은 자위권이 있다고 한 것에 동의한다”면서도 “비례성에 대해서는 정의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국제법적 원칙인 비례성이란 공격 격퇴와 저지 목적에 맞도록 무력 수단과 사용 방식에서 균형을 찾아야 한다는 것으로 지나친 보복을 금한다는 뜻도 된다.
유럽 쪽은 과거에도 이스라엘에 이를 지키라고 촉구한 바 있다. 스톨텐베르그 사무총장은 회의 뒤 기자회견에서 이스라엘에 대한 지지 의사를 밝히면서도 “민간인 보호가 중요하다”며 “비례성을 지켜야 한다는 요청이 있으며, 많은 동맹국이 이를 강조했다”고 말했다.
12일(현지시각) 이스라엘의 공습 이후 가자지구 중심 도시 가자시티에서 화염이 솟구치고 있다. 가자지구/AFP연합뉴스
12일 이스라엘군에게 공습을 당한 가자지구에서 화염과 연기가 치솟고 있다. 가자지구/EPA 연합뉴스
미국은 유엔이나 유럽연합(EU)과는 달리 가자지구 전면 봉쇄에 반대하는 뜻도 밝히지 않았다. 다만 조 바이든 대통령은 민간인 살상을 최소화한다는 ‘전쟁 규칙’을 지키도록 이스라엘에 요구했다고 했다. 블링컨 장관은 네타냐후 총리와의 공동기자회견에서 “민주 국가들은 테러리스트들과는 다른 기준을 지키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민간인을 고의적으로 노리지 않는 한, “모든 하마스는 죽은 목숨”이라고 한 네타냐후 총리의 보복 의지에 브레이크를 걸지 않겠다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는 말이다.
나토 회의에 참석한 그랜트 섑스 영국 국방장관이 이스라엘군의 가자지구 공격을 언급하며 “그들은 고의적으로 민간인을 공격하지 않는다”고 한 것도 이런 ‘기준’에 따른 말로 이해된다. 하지만 가자지구 같은 곳에 대한 공격은 대규모 민간인 살상을 수반할 수밖에 없다는 문제가 있고, 이는 현실로도 나타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탄약과 아이언돔 방공미사일 등을 제공하겠다고 밝힌 미국은 이스라엘에 대한 무기 지원에 속도를 내고 있다. 폴리티코는 미국 국방부 고위 관계자가 정밀유도 소구경탄 등도 제공할 계획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미국이 이스라엘에 있는 자국인들을 대피시킬 항공편을 배치하고, 영국도 이스라엘 근해에 군사력을 전개하면서 가자지구 안팎의 긴장감은 더 커지고 있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전략소통조정관은 13일부터 미국인 대피용 전세기가 운항된다고 밝혔다. 미국인 27명이 숨진 것으로 집계된 가운데 이스라엘을 벗어나려는 이들은 항공편 축소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리시 수낵 영국 총리는 이스라엘을 돕고 상황을 안정시키기 위해 미국 항공모함 제럴드 포드호가 전개된 이스라엘 근해로 지원 함정 2척, 정찰기, 해병대원 100명을 보낸다고 밝혔다.
워싱턴/이본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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