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베스·아마디네자드 “석유대금 유로화로 받겠다”
달러 흔들리면 미국의 세계경제 지배력 깨질 수도
달러 흔들리면 미국의 세계경제 지배력 깨질 수도
미국의 세계 석유자원 통제와 달러 헤게모니를 지탱하는 무기인 석유거래의 달러화 결제가 심각한 도전을 만났다.
영국을 방문 중인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16일 영국 텔레비전 <채널4>와 인터뷰에서 “이란 대통령의 흥미로운 제안에 호응해 원유 대금 결제를 달러에서 유로로 바꾸는 방안을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차베스 대통령은 “이란 대통령도 달러와 경쟁하는 단일통화(유로)를 탄생시킨 유럽의 힘을 인정했다”며 “우리는 달러나 유로 가운데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앞서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은 지난 5일 아제르바이잔을 방문했을 때 “오는 7월부터 이란은 원유와 가스 수출대금을 달러가 아닌 유로로 받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달초 이란 석유부는 지난해부터 세계 금융시장을 숨죽이게 만들었던 이란석유거래소(IBO)의 설립 등록을 승인해, 거래소가 곧 개설될 것이라고 국영텔레비전을 통해 발표했다. 이란은 애초 이란력으로 새해가 시작되는 지난 3월20일 남부 자유무역지대인 키시섬에 이란석유거래소를 개설하고 석유화학제품과 원유 대금을 유로로 결제할 예정이었으나 “기술적 이유로” 연기했었다.
세계 원유시장에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산유국 이란과 베네수엘라가 원유 대금을 유로로 결제하고, 유로를 기준으로 하는 석유거래소를 운영한다면, 세계 경제를 지배하는 미국의 ‘달러 헤게모니’에 큰 타격을 줄 것이라고 많은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현재 국제유가의 기준이 되는 뉴욕거래소의 서부텍사스중질유(WTI)와 런던거래소의 브렌트유, 중동권과 싱가포르에서 거래되는 두바이유는 모두 달러로 값이 정해지고 거래된다. 이는 원유를 거래하는 전세계 국가들의 중앙은행이 대량의 달러를 비축하도록 해 금태환이 되지 않는 달러가 기축통화로 유지되는 버팀목 역할을 해왔다.
만약 세계 4위의 원유 수출국 이란(세계 원유 공급의 5% 차지)과 5위 수출국인 베네수엘라가 원유값을 유로로 책정한다면, 두나라로부터 원유를 수입하는 국가의 중앙은행은 달러를 팔고 유로화 비중을 크게 늘려야 한다. 기록적 재정적자를 안고 있는 미국의 달러 대신 유로를 통한 원유거래가 늘어나 달러가치 폭락과 미국의 지배력 약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시나리오다. ‘페트로 달러’ 대신 ‘페트로 유로’의 시대가 온다는 것이다.
올들어 달러화 추락이 계속되는 가운데 카타르와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중앙은행들이 외환보유고 중 달러 비중을 줄이고 유로 매입에 적극 나서고 있으며, 시리아도 지난 3월 원유거래를 달러에서 유로로 바꿨다고 <블룸버그통신> 등은 보도했다.
실제로 1971년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이 달러의 금태환을 중지하자, 석유수출국기구(오펙) 소속 산유국들은 달러 거래를 하지 않는 방안을 검토하기도 했다. 당시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에 대한 집중외교와 비밀거래를 통해 달러 거래를 유지하도록 설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0년 11월에는 사담 후세인 당시 이라크 대통령이 이라크의 원유판매 대금을 유로화로 바꿨기 때문에 미국이 이라크 침공을 서두를 수밖에 없었다는 분석도 많다. 미국은 바그다드 점령 직후인 2003년 6월 이라크 석유 대금 결제를 달러로 서둘러 바꿨다.
이란의 유로화 결제 계획은 안보리에서 이란 제재 결의안을 통과시키려는 미국을 압박하려는 의미가 더 크다는 분석도 있다. 이란 석유부도 석유거래소를 연다고 해도 유로 결제는 석유화학제품 거래에 집중한 뒤 점진적으로 원유 거래에 적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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