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미감정·여성학대 등 여전”…부시주장과 달라
“여성들은 온몸을 가리는 옷을 입고 운전도 하지 말라는 위협을 받고 있다. 이슬람주의자들과 민병대가 일상을 통제한다. 미국에 대한 반감이 심해지고 있고, 다른 종파가 사는 지역에 발을 들여놓는 것도 위험해졌다.”
이라크 반전단체의 구호가 아니다. 잘마이 칼릴자드 이라크 주재 미국 대사가 지난 6일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에게 보낸 비밀전문이다.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는 20일 이 전문 내용을 보도하면서, “이라크 상황이 나아지고 있다”는 조지 부시 대통령의 주장과 달리 이라크인의 일상이 얼마나 깊은 늪으로 빠져들었는지를 보여준다고 전했다.
칼릴자드 대사는 미 대사관에서 일하는 이라크인들의 증언을 토대로 “한 여직원은 얼굴까지 가리고 다니라는 위협을 받는다고 말했다. 한 수니파 여성은 이웃들로부터 휴대전화도 사용하지 말라는 압박을 받고 있다. 남성들도 짧은 옷 차림으론 나다니지 못한다”고 보고했다.
재건사업이 진척되지 않아 전기난도 심각하다. “기온이 46℃까지 올랐지만 바그다드에서도 1시간 전기가 들어오면 6시간 동안 전기가 끊긴다. 한 달 내내 전기가 들어오지 않은 곳도 있다. 장관이 사는 지역에선 24시간 내내 전기가 들어온다.”
이라크인들의 반미감정이 심각한 상태라는 것도 인정하고 있다. “직원들은 미국 대사관에서 근무하는 것을 알면 사형선고를 받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한다. 가족들에게도 여기서 일한다는 사실을 숨긴다. 근무시간 뒤 전화를 걸면 영어를 모르는 체 하기 위해 아랍어로만 받는다. 한 직원은 이웃들이 점점 더 연합군 주둔을 싫어하기 때문에 힘들다고 말한다.”
폭력사태는 언제 어디서 닥칠지 모르고, 종파간 증오도 심각하다.
“한 직원은 ‘매일 저녁 장례식에 참석한다’고 했다. 직원 한 명의 사돈은 납치됐다 풀려났고, 한 직원은 위협을 받은 뒤 해외로 이주했다. 이들은 매일 어떻게 안전하게 다닐지 궁리해야 한다. 자신들이 속한 거주지 밖으로 갈 때는 해당 지역의 옷과 말투를 흉내낸다. 생존술을 익혀야 한다. 지역마다 ‘알라사스’라는, 외지인을 감시하는 정보원들이 있다. 사람들은 더이상 이웃을 믿지 않는다.”
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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