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파키스탄 카라치의 신문 가판대에서 한 남자가 파키스탄 정보기관이 영국발 여객기 테러 음모를 적발하는 데 도움을 줬다는 제목의 기사를 보고 있다. 카라치/AP 연합
작년 7월 런던테러직후…영 정보국 극비 추적
용의자 19명 신원공개…언론 “평범한 청년들”
용의자 19명 신원공개…언론 “평범한 청년들”
2005년 7월7일 52명이 숨진 런던 지하철·버스 연쇄 폭탄테러로 비상이 걸린 영국 경찰 당국에 며칠 뒤 걱정스런 제보전화가 한통 걸려왔다. 자신은 영국에 살고 있는 무슬림이며 아는 사람이 뭔가 수상한 일을 저지를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아는 사람이 수상하다’는 제보전화가 단서=이 모호한 단서가 10일 세계를 발칵 뒤집어 놓은 ‘영국판 9·11’ 항공기 테러 음모를 추적하는 시발점이 됐다고 <워싱턴포스트>가 유럽 정보 당국자의 말을 따 11일 보도했다. 영국 경찰과 정보국은 영국발 미국행 항공기를 동시에 폭파하려 한 테러 계획의 용의자로 영국 태생의 무슬림 청년 24명을 10일 체포해 조사 중이다. 용의자들은 당시 48시간 안에 여객기 최대 10대를 폭파시키려는 계획을 실행하려는 상황이었다고 영국 <인디펜던트>는 전했다. 경찰은 용의자들에 대한 잠정 조사 결과를 토대로 11일 이 가운데 19명의 이름과 거주지 등을 공개했으며, 영국은행은 이들의 계좌를 동결했다. 이들은 17~35살로 런던과 버밍엄 등지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첫 제보를 받은 뒤 영국 국내정보국(MI5)과 런던 경찰청은 용의자들의 전화 통화와 인터넷 사용 기록, 행적을 밀착 감시했다. 추적은 1년 동안 계속됐다. 런던과 그 외곽인 하이와이콤, 버킹엄셔, 버밍엄 등 영국 전역에 이들의 조직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고, 일부가 파키스탄을 오가며 자금과 조직원을 모집하는 것을 추적했다.
경찰은 이들의 집을 수색하는 과정에서 유언처럼 남기려 했던 ‘순교’ 비디오 등을 찾아냈다고 <시엔엔>(CNN)이 전했다. 미국 국토안보부 관계자는 용의자가 최대 50명에 이를 수도 있다고 밝혔다.
평범한 이웃 청년들이 범인=<채널4> 방송은 이슬람자선단체 직원과 히스로 공항 직원 등 평범한 사람들이 용의자들이라고 보도했다. 런던 북부에서 체포된 용의자 이브라힘의 이웃인 함자 가푸르(20)는 <에이피(AP) 통신>에 “그는 나쁜 짓을 하지 않았다. 축구를 좋아하고 모스크에 다니는 좋은 청년”이라며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다. 영국 경찰은 도청 결과 이들이 전세계적 성전(지하드)과 알카에다 이념에 동조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알카에다가 직접 개입해 지휘한 증거는 찾아내지 못했다.
런던경찰청과 영국 언론들은 용의자들이 액체 폭발물을 가지고 항공기에 나눠탄 뒤 운항 도중 대서양 상공이나 미국 도시 상공에서 동시에 폭파시키려 했으며, 1차로 5대를 폭파하고 충격이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2차로 4~5대를 폭파해 최대 10대를 공격하려 했다고 전했다. 2800명이 넘는 승객과 승무원의 목숨을 겨냥한 셈이다.
이들이 운항시간표를 검색했던 항공기들은 아메리칸, 콘티넨털, 유나이티드 등 미국 3개 항공사의 뉴욕과 워싱턴DC, 보스턴, 시카고, 로스앤젤레스행 여객기들이었다. 파키스탄 정보당국은 1주일 전 라호르와 카라치에서 체포한 2명에게서 영국-미국 운항 여객기를 폭파시키려는 계획을 준비하고 있다는 정보를 알아내 영국에 전달했다고 <에이피 통신>이 전했다. 경찰은 이 시점에서 사건이 임박한 것으로 판단해 용의자 체포작전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영국과 미국은 이번 수사에서 긴밀하게 공조했다. 토니 스노 백악관 대변인은 10일 “조지 부시 대통령이 지난 6일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와 이 문제로 장시간 전화 통화를 했으며, 9일에도 통화를 나눴다”고 밝혔다.
95년 알카에다 관련 사건 닮아=액체 폭발물을 이용하려 한 이번 사건은 1995년 ‘보진카’ 사건과 비슷한 점이 많다고 <뉴욕타임스>가 보도했다. 세르비아어로 ‘큰 폭발’이란 뜻의 ‘보진카’ 계획은 알카에다 간부인 할리드 셰이크 모하마드와 폭발물 전문가 람지 유세프가 미국과 서울, 홍콩행 등 여객기 12대를 태평양 상공에서 폭파시키려 했던 사건이다. 이들은 니트로글리세린을 넣은 병을 비행기에 놓고 내린 뒤 전자손목시계를 이용해 기폭장치를 폭파시키려 했지만, 그전에 머물던 필리핀 마닐라의 아파트에서 화재가 일어나 미리 발각됐다. 박민희 기자, 워싱턴/류재훈 특파원 minggu@hani.co.kr
액체폭발물이란?
95년 알카에다 관련 사건 닮아=액체 폭발물을 이용하려 한 이번 사건은 1995년 ‘보진카’ 사건과 비슷한 점이 많다고 <뉴욕타임스>가 보도했다. 세르비아어로 ‘큰 폭발’이란 뜻의 ‘보진카’ 계획은 알카에다 간부인 할리드 셰이크 모하마드와 폭발물 전문가 람지 유세프가 미국과 서울, 홍콩행 등 여객기 12대를 태평양 상공에서 폭파시키려 했던 사건이다. 이들은 니트로글리세린을 넣은 병을 비행기에 놓고 내린 뒤 전자손목시계를 이용해 기폭장치를 폭파시키려 했지만, 그전에 머물던 필리핀 마닐라의 아파트에서 화재가 일어나 미리 발각됐다. 박민희 기자, 워싱턴/류재훈 특파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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