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직후 협조 안하면 폭격…석기시대 만들겠다”
미국이 2001년 9·11테러 직후 파키스탄 정부에 “대테러전쟁에 협조하지 않으면 폭격해 석기시대로 만들어버리겠다”고 협박했다고 21일(현지시각) 페르베즈 무샤라프(52) 파키스탄 대통령이 털어놨다.
무샤랴프 대통령은 이날 <시비에스(CBS)> ‘60분’ 프로그램과의 회견에서, 9·11 직후 리처드 아미티지 당시 미국 국무부 부장관이 파키스탄 정보국장에게 “대테러전쟁에 협력하지 않으면 폭격 맞아 신석기시대로 돌아갈 각오를 하라”고 위협했다고 공개했다.
그는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정권과의 전쟁을 위해 (파키스탄-아프가니스탄) 국경의 파키스탄 군 기지와 초소들을 미군에게 넘기라는 요구도 함께 전달받았다”며 “매우 무례한 발언이라고 생각했지만 국익을 생각해 행동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정권과 우호 관계에 있던 파키스탄은 그뒤 이슬람권의 대표적인 친미 정권으로 탈바꿈했다. 그러나 때때로 탈레반 세력을 뒤쫓는 데 소극적이라는 비판을 미국 강경파들로부터 받았다.
무샤라프 대통령은 또 “미국의 다른 요구 가운데는 ‘웃기는 것’들이 있었다”며 일부를 소개했다. 그는 ‘파키스탄 내에서 대미 테러를 지지하는 의사표현을 단속해 달라’는 요구도 미국대사관을 통해 전달됐다며, “의사표명을 하는 걸 막을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무샤라프의 이 발언은 22일 워싱턴에서 조지 부시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기 직전에 나와 부시 행정부를 깜짝 놀라게 했다. 유엔총회에서 상당수 나라들이 미국의 일방주의적 외교정책을 비난한 데 이어, 강력한 동맹국으로 여겼던 파키스탄마저 이런 사실을 폭로하자 부시 행정부는 당황한 빛이 역력했다.
부시 대통령은 무샤라프와의 백악관 정상회담 뒤 공동 기자회견에서 “(무샤라프 발언에) 허를 찔린 느낌이었다”고 토로했다. 그는 그러나 파키스탄이 대테러전쟁에서 미국을 확고히 도와주고 있다고 칭찬함으로써 두 나라간 긴장을 완화시키려 애썼다.
발언 당사자로 지목된 아미티지 전 부장관은 “파키스탄에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한 건 사실이지만 파키스탄을 폭격하겠다고 말하진 않았다”고 부인했다고 <시엔엔>이 보도했다. 토니 스노 백악관 대변인도 “(아미티지와 파키스탄과의 사이에) 의사소통의 잘못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미국의 정책은 폭격 위협을 하는 게 아니다. 미국 정책은 무샤라프 대통령에게 ‘우리는 당신의 선택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이었다”고 해명했다.
부시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바로 앞둔 시점에 무샤라프가 왜 이런 얘기를 털어놓았는지도 관심이다. 미국 강경파들은 파키스탄 정부가 아프가니스탄 국경 부근의 부족들과 평화협상을 하는 걸 못마땅하게 생각해 왔다. 평화협정이 이 일대의 탈레반 세력을 온존시킬 수 있다는 우려에서였다.
최근 부시 대통령은 <시엔엔(CNN)> 회견에서 ‘파키스탄 영토 내라도 오사마 빈 라덴을 잡기 위해서라면 미군이 필요한 조처를 취하겠다’고 밝혀, 파키스탄의 반발을 샀다. 무샤라프는 부시 발언에 대해 “그런 일(미군의 파키스탄 영토내 작전)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 스스로 그 일(빈 라덴 추적)을 하겠다”고 불쾌감을 표시했다. 무샤라프의 폭로는 이런 분위기 속에서 나왔을 것이란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워싱턴/류재훈 특파원, 박찬수 기자 hoonie@hani.co.kr
최근 부시 대통령은 <시엔엔(CNN)> 회견에서 ‘파키스탄 영토 내라도 오사마 빈 라덴을 잡기 위해서라면 미군이 필요한 조처를 취하겠다’고 밝혀, 파키스탄의 반발을 샀다. 무샤라프는 부시 발언에 대해 “그런 일(미군의 파키스탄 영토내 작전)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 스스로 그 일(빈 라덴 추적)을 하겠다”고 불쾌감을 표시했다. 무샤라프의 폭로는 이런 분위기 속에서 나왔을 것이란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워싱턴/류재훈 특파원, 박찬수 기자 hooni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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