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신저 “핵무기 폐기해야”
조지 부시 미국 행정부가 20년 만에 새로 개발할 신형 핵탄두 설계안을 이번 주 확정·발표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미국의 핵 정책에 대한 비판과 논란도 가열하고 있다.
미국 핵무기위원회(NWC)는 양대 핵무기연구소인 로스 알라모스연구소와 로런스 리버모어 연구소가 경쟁적으로 개발해온 ‘신뢰할 만한 대체 핵탄두’(RRW)의 설계표준을 선택하는 대신, 두 설계안을 섞은 설계안을 발표할 것이라고 <뉴욕타임스>가 7일(현지시각) 보도했다. 국방부와 에너지부, 국가핵안보국(NNSA)의 핵 정책담당자들로 구성된 핵무기위원회는, 보유 핵무기를 관리·감독하고 핵무기 정책의 방향을 결정하는 기구다.
부시 행정부가 3년여 동안 추진해온 신형 핵탄투 개발계획은 낡은 구형 핵탄두를 21세기용 ‘신뢰할 만한 핵탄두’로 교체하는 것으로, 1000억달러 이상이 드는 대형 프로젝트이다. 지난해 11월 비밀리에 구성된 한 연방 검토위가 구형 핵탄두의 안전성에 이상이 없다는 조사 결과를 내놓자, 부시 행정부는 노후 핵무기 대체라는 명분 대신 비우호적인 세력에게 핵무기가 넘겨졌을 때 사용할 수 없도록 하는 비밀 기술이 필요하다는 논리를 내세워 사업을 추진해왔다.
이에 대해 일부 전문가들은 기존의 구형 설계에 실험을 거치지 않은 새로운 요소를 결합한 ‘잡종 설계안’이 새 핵무기의 실험 필요성을 제기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를 표명했다. 레이 키더 리버모어연구소의 선임연구원은 “기술적인 장점보다는 두 연구소에 대한 ‘생존의 정치’가 고려된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미국의 새로운 핵무기 개발계획이 핵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는 북한과 이란에 대한 제재 시점과 맞물리면서, 다른 나라에 대한 핵 우위를 확보하려는 위선적인 행동으로 비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또 미국이 핵실험를 결정하면 중국과 러시아의 핵실험 결정으로 이어질 수 있고, 지난해 10월 핵실험을 한 북한에게 추가 핵실험의 길을 열어줄 것이라고 이들은 지적했다. 미국은 1992년 지하 핵실험 중지(모라토리엄)을 선언했으나, 96년 유엔총회에서 채택한 포괄적 핵실험금지조약(CTBT) 비준은 거부하고 있다.
앞서 헨리 키신저, 조지 슐츠 전 국무장관과 윌리엄 페리 전 국방장관, 샘 넌 전 상원 군사위원장 등 전직 국무·국방장관들은 미국의 핵무기 정책이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5일 <월스트리트저널>에 ‘핵무기 없는 세상’이란 제목의 공동기고문을 통해 로널드 레이건 전 미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1986년 레이캬비크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모든 핵무기의 폐기라는 비전을 되살려 미국이 전세계적인 핵무기 폐기에 선도적 역할을 수행할 것을 촉구했다.
워싱턴/류재훈 특파원 hooni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