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박’에 빠진 부시, 나홀로 베팅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새 이라크 정책을 발표한 10일 반전 시위대가 백악관 북서쪽 문 앞에서 “이라크에 있는 내 형제를 돌려보내라”는 등의 내용이 적힌 팻말을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워싱턴/AP 연합

사실상 네오콘 보고서 채택
의회, 증파 금지법안 등 맞불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10일 다시 한 번 도박을 감행했다.

부시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이라크에서의 실패는 이라크 뿐 아니라 중동지역, 더 나아가 미국에 재앙이 될 것”이라며 확전 논리를 폈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은 지상전이 벌어질 이라크에서 성공에 근접하기도 전에 민주당 주도의 의회에서 심각한 도전에 직면할 것으로 보인다.

계산된 도박 =<뉴욕타임스>는 부시 대통령의 증파 방침을 ‘계산된 도박’ 이라고 평가했다. 이라크정책에 대한 미국 내 논란에도 미 국민들이 자신에게 승기를 잡을 시간을 줄 것이고, 의회도 전쟁비용을 삭감하지 못할 것이라는 판단이 깔려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 폴 크루그만은 “비합리적 결정은 착각에서 나온다”며 “이라크의 현실에 정면으로 대면하지 않으려는 것은 손실을 줄이기 위해 도박장을 떠나지 못하는 노름꾼의 모습”이라고 비판했다.

네오콘의 반격=부시 대통령의 이번 증파 방안은 중간선거 이후 퇴조 기미를 보이던 네오콘(신보수주의자)의 ‘부활’을 뜻한다. 부시 대통령의 발표는 상당 부분 네오콘의 주장을 수용한 것이다. 그동안 네오콘의 대표주자들인 윌리엄 크리스톨 <위클리스탠더드> 편집장과 미국기업연구소(AEI)의 프레드릭 케이건은 “일생일대의 중요한 전쟁에서 아직도 성공할 수 있다”며 부시의 자존심을 부추겼다. 이번 방안은 비록 증파 규모는 줄어들었지만, 케이건이 주도한 네오콘들의 이라크 보고서인 ‘이라크 성공계획’의 뼈대를 그대로 옮겨놓은 것이다.

결국 부시 대통령은 체면을 세운 채 이라크에서 탈출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한 초당적인 이라크연구그룹의 권고안이나, 일선 지휘관들의 건의 등을 외면했다.

<유에스에이투데이>는 “이라크와 베트남은 공통점이 별로 없지만 최고사령관인 대통령이 적을 과소평가하고, 국민에게 솔직하지 못했다는 두 가지 점에서 꼭 닮았다”고 지적했다.

이라크 전투만큼 힘든 의회 싸움=부시 대통령은 이날 병력 증강 등 대테러정책 마련을 위해 초당적 실무그룹을 구성해 의회와 협력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의회와 협의는 겉치레에 불과했다”며 냉소로 답했다. 이번 증파안 자체가 의회의 승인 사항은 아니다. 또 상·하원의 민주당 지도부가 추진하는 증파 반대 결의안이 구속력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척 헤이글, 샘 브라운백 상원의원 등 공화당의 유력 의원들까지 민주당 쪽에 가세할 것으로 보여 부시 대통령이 의회의 지원을 얻기는 험난해 보인다. 나아가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 같은 이는 증파 금지법안의 통과를 주장하고 있고, 일부 의원들은 증파 반대를 넘어서 철군안을 요구하고 있어 부시 대통령에게는 산넘어 산과 같은 형국이다.

워싱턴/류재훈 특파원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