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안전판 만들려 행정부에 고강동 압박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놓고 미국에서 일고 있는 노동·환경 분야 재협상 혹은 추가협상 움직임이 거세다. 이 기류가 두 나라 사이의 실질적인 재협상으로까지 이어질지는 불투명하나, 한국에 엄청난 압력이 될 것은 분명하다.
웬디 커틀러 한-미 자유무역협정 미국쪽 수석대표가 11일 “노동과 다른 조항 등 자유무역협정의 새로운 기준에 대한 의회와의 협의가 끝나면 한국쪽과 최선의 진전방향을 모색해야 할 상황에 놓일 것”이라고 밝힌 대목은 일단 재협상과는 거리가 있다. 재협상을 하려면 협상 상대의 동의가 전제돼야 하나, 한국쪽이 불가 입장을 분명히 했기 때문이다.
2일 협상을 타결한 한-미 자유무역협정의 노동 부분은 서로 상대국의 현행 법률을 존중한다는 선에서 합의됐다. 민주당 쪽은 노동 부분에 국제노동기구(ILO) 기준 수용 등을 주장해 왔으나, 공화당과 행정부가 반대해 협정안은 이렇게 정리됐다. 워싱턴의 통상소식통은 협정 타결 뒤 “의회와 행정부는 의회 통고 30일 안에 제출하게 되어 있는 노동분야 자문위의 검토보고서에 이 문제를 포함시킬 것을 요구해 놓았다”며 “보고서가 제출된 이후로 판단을 유보해 놓은 상태”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앤서니 킴 헤리티지재단 연구원은 “민주당의 새 통상정책은 구체적이지 못하고, 한국의 경우 노동·환경 분야에서 별 문제가 없다”며 한국보다는 노동·환경 기준이 크게 미달한 페루, 콜롬비아, 파나마와의 협정을 겨냥한 요구라는 평가다. 강제노동 금지 등 국제노동기구 기준은 미국도 모두 충족하지 못하는 상태다. 이 때문에 미국 의회에서 공화당의 동의도 얻기 힘들지만, 행정부도 받기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예를 들어 강제노동 금지의 경우, 우리의 경우엔 공익근무요원 제도, 미국의 경우엔 재소자 노동이 위반된다.
그러나 노동과 환경기준 강화에 대한 민주당 쪽의 주장은 좀더 거시적인 배경도 있다. 찰스 랭걸 하원 세출위원장이 밝혔던 민주당의 새 무역정책은 국제노동기구가 권고하는 국제적 노동기준(강제노동 금지, 취업 차별 등)을 적용할 것과 환경기준 강화를 주장하고 있다. 이는 현재 미국 행정부가 추진하는 자유무역협정에 대한 안전판을 만들겠다는 흐름을 반영한다. 최대 노동단체인 전국노동총연맹 산업별회의(AFL-CIO) 등도 미국의 미비한 노동법 개정을 위해 이 문제를 적극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단기적으로 보아도 민주당 쪽은 이번 문제를 신속무역협상권(TPA) 연장을 희망하는 부시 행정부 쪽에 던지는 협상용으로 활용할 것으로 보여, 한국에 가해질 압력은 간단치 않을 것이다. 워싱턴/류재훈 특파원 hooni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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