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지니아공대 총기 난사 사건에서 총상을 입었던 박창민씨(가운데)가 다른 학생들과 함께 17일 오후 희생자 추모 행사에 참석해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고 있다. 블랙스버그/연합
버지니아 공대 유학생이 블로그에 쓴 글
전 미국을 슬픔에 빠지게 한 총기난사 사건이 제가 다니는 학교에서 일어났습니다. 제가 있는 건물에서 직선거리로 100미터가 채 안되게 떨어져 있는 건물에서였습니다.
평화롭고 안전하기로 평판이 좋았던 블랙스버그에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뿐더러 우리 과 교수님과 친구들이 숨졌다는 사실은 더더욱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한국 학생 가운데 한 명도 총을 맞아서 병원에 있었습니다. 하늘이 도왔는지 가벼운 관통상을 입은 그 친구와 어젯밤을 병원에서 보내면서 얘기를 나누었습니다만 도통 무엇이 어찌 된 것인지 정신이 없기만 합니다. 함께 수업을 듣던 우리 과 친구들 15명 중 3명만이 총격 후 일어날 수 있었다는 얘기로 미루어, 나머지 학생은 모두 죽은 것으로 판단됩니다. 인도 출신의 교수님은 벌써 지난 밤에 사망자 명단에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만나면 항상 웃는 얼굴로 저와 가족의 안부를 묻고, 이번 학기부터 맡은 실습강의로 바쁘다던 브라이언과 매트, 지난 토요일에도 도서관에서 일하며 학비를 벌던 인도네시아에서 온모라, 사건 전날에도 인터내셔널 거리축제에서 만나서 인사를 했던 이집트에서 온 왈리드…
이런 친구들이 하루 아침에 세상을 떠나버린 겁니다. 사람이 살고 죽는 것은 참 아무도 모른다지만 어떻게 내 주변에서 이런 끔직한 일이 일어났는지 도무지 믿어지지 않습니다.
오늘 오전에 함께 있던 병원을 나서서 집에 도착하니 방송에서 범인이 한국계라고 발표를 하더군요. 그 이후, 같은 민족이 저지른 참사에 제 스스로가 죄인이 된 기분이 들었습니다. 한국 유학생과 가족들의 안전도 걱정되었습니다. 기분이 참담했습니다.
오늘 오후에는 미국 대통령도 참석한 희생자 추모행사가 교내에서 있었습니다. 한인 유학생들은 함께 모여서 참석을 했습니다. 총상을 입은 친구도 희생된 친구들을 추모하기 위해 아픈 몸을 이끌고 함께 갔습니다. 그 곳에서도 왠지 마음이 편치 않았고 행사 후 과 건물이 있는 곳으로 혼자 걸어가면서도 마음과 행동이 위축된 기분이었습니다.
학교와 과는 풍비박산이 되었고 한인 학생들은 걱정스럽고…앞으로 어찌 해야 할 지 좀 막막한 심정입니다. 내일부터는 좀 마음을 가다듬고 학교에도 나가보려 합니다만 마음이 편치 않은 건 사실입니다. 교수님과 친구들의 죽음, 그리고 한국계 범인으로 인한 충격, 이 두가지를 앞으로 어떻게 극복해 나가야 할까요. 사실 내일 당장 교수님과 다른 친구들을 만나서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이성적으로 생각할 것으로 생각합니다만 일부의 증오심이 좀 걱정됩니다. 저희들이 진심을 가지고 조심스럽게 행동하는 수밖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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