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 버지니아주 블랙스버그의 버지니아공대 드릴필드에 모인 수천명의 군중들이 17일 총격사건 희생자들을 위한 촛불 추모제를 열고 있다. 왼쪽에 보이는 성조기가 조기로 게양돼 있다. 블랙스버그/AP 연합
버지니아 공대 추모집회 1만명 운집
부시 대통령 “평온 되찾는 날 올것”
부시 대통령 “평온 되찾는 날 올것”
미국 역사상 최악의 총기 참사가 벌어진 다음날인 17일(현지시각) 버지니아공대는 엄숙한 추도 분위기에 휩싸였다.
오후 2시로 예정된 추모집회가 열리기 2시간여 전부터 행사장인 카셀콜로세움(구내 농구장)으로 들어서는 길목엔 오렌지색과 주황색 체육복을 입은 학생들과 교직원, 인근 주민들이 긴 줄을 이뤘다. 5천여명이 정원인 인근 레인스타디움(미식축구장)엔 어느새 1만여명 넘게 들어와 운동장 바닥을 거의 메우고 스탠드를 상당부분 채울 정도였다.
단상에 오른 조시 부시 대통령은 “오늘은 버지니아공대 커뮤니티를 애도하는 날이며 온 나라가 슬픔에 잠긴 날”이라며 “고통받는 모든 이들에게 평안함이 깃들 수 있기를 하느님께 간구하고 있고 버지니아공대의 생활이 평온을 되찾는 그런 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고 말해 등단할 때보다 큰 박수를 받았다.
이날 졸업생 대표로 마지막에 등단한 니키 조반니 영문과 교수는 “우리는 이겨낼 것이다. 우리는 버지니아공대다”라며, 슬픔을 딛고 일어설 것을 촉구하는 구호성 연설을 했다. 농구장과 축구장에 운집한 학생·시민들은 일제히 일어서서 화답했다. 이날 행사를 지켜본 3학년생 몰리 리드는 “우리들이 단합해 호키(버지니아공대의 상징)의 프라이드를 보여줄 것을 다짐하는 행사”라고 말했다. 추모행사엔 전날 가벼운 총상을 입고 퇴원한 피해자 박창민씨가 친구 10여명과 함께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캠퍼스에 어스름 해가 기울면서 촛불집회가 열린 전쟁기념교회 앞 잔디밭으로 향하는 길에는 차량과 인파가 줄을 이었다. 손에 손에 촛불을 든 1만여명의 학생·시민들은 밤 늦게까지 추모의 노래를 부르며 기도를 올리거나, 촛불기념탑 주변을 떠나지 않았다. 바로 옆 게시판에는 희생자들을 위한 추모의 글이 남겨졌다. 추모의 글은 하나같이 “우리는 신과 함께 악을 이겨낼 것이다”는 등의 희망을 얘기하는 글들이 많았다.
대학생 레베카 그리어는 “이는 비극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추모의 자리에 참석한 것을 보니 행복하다”고 말했다. 추도 인파와 최악의 참사를 겪은 학생들의 얼굴에서 분노의 표정을 찾기가 쉽지 않은 성숙한 모습이었다. 블랙스버그/류재훈 특파원 hooni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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