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 학살의 생존자로 버지니아공대 총기난사 사건으로 목숨을 잃은 리뷰 리브레스쿠 교수의 부인인 말레나 리브레스쿠가 18일 뉴욕에서 남편의 장례식을 치른 뒤 기자들에 둘러싸여 슬픈 표정을 짓고 있다. 뉴욕/AP 연합
박사후 과정 정남희씨, ‘홀로코스트’ 리브레스쿠 교수 회고
“한국 제자들에 잔정 많고 분단 상황 이해 많았던 분” “한국을 사랑하고 한국인 제자도 많은 교수님께서 한국 학생의 손에 돌아가시다니….” 지난해 8월부터 버지니아공대 기계공학과에서 박사후과정을 밟고 있는 정남희(36·충남대 기계공학과 박사)씨는 19일(현지시각) 나치의 대학살에서도 살아남았던 스승 리비우 리브레스쿠(76) 교수가 총기난사 사건으로 목숨을 잃은 데 대해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리브레스쿠 교수는 16일 범인 조승희씨가 강의실에 들어오려 하자, 문을 몸으로 막으며 학생들을 보호하려다 총에 맞아 숨졌다. 한국인 가운데 유일하게 부상을 입은 박창민(27)씨도 그의 응용수리학 강의실에 있다가 봉변을 당했다. 리브레스쿠 교수는 정 박사의 충남대 지도교수인 송오섭 교수의 스승이다. 또 정 박사는 대학원 시절부터 리브레스쿠 교수와 공동 저자로 학술지에 연구논문을 발표했다. 정 박사는 이런 인연으로 이 학교에서 박사후과정을 밟게 됐다. 리브레스쿠 교수 밑에는 한국인 제자가 10여명이나 몰려 있을 정도로 한국 학생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또 리브레스쿠 교수는 일본의 학술대회에 참석한 뒤에는 꼭 한국을 들르곤 했다. 정씨는 “리브레스쿠 교수는 한국의 분단 상황에 대해서도 특히 이해가 많았던 분”이라며 “북한 문제가 화제에 오르면 주위 사람들에게도 자세한 설명을 아끼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리브레스쿠 교수가 연구 활동으로 바쁜 가운데서도 제자들에게 “잔정을 많이 베풀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미국에 오기 전까지 리브레스쿠 교수와 전자우편을 통해서만 연락을 해 얼굴도 알지 못했는데도 내가 지난해 8월 미국에 왔을 때 리브레스쿠 교수가 하숙집에 찾아와 ‘물갈이’를 걱정하며 생수와 한국 과자를 사다 놓고 가셨다”고 말했다. 그는 리브레스쿠 교수와 함께 찍은 사진이 한 장도 없어 마음이 더 아프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평소 같으면 범행이 일어나고 있던 노리스홀 3층 강의실에 있었을 텐데 마침 사건이 난 16일 취업 관련 서류를 준비하느라 2시간 늦게 학교에 나와 화를 면했다”면서 먼저 간 스승을 더욱 그리워했다. 블랙스버그/류재훈 특파원 hooni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