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류재훈 특파원
결핵은 후진국병도 과거의 병도 아닌 현재의 병이다. 약만 잘 먹으면 치료된다고 쉽게 생각하는 결핵은 지금까지 개발된 10종의 결핵치료제가 전혀 듣지 않는 새로운 변종의 슈퍼 내성결핵(XDR-TB)으로 무섭게 진화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내성결핵으로 인해 인류는 다시 항생제 이전의 시대로 돌아가고 있다”고 경고했다.
지난주 미국 언론들은 한 내성결핵 환자 얘기로 온통 떠들썩했다. 이 환자에게 내려진 연방정부 차원의 강제 격리수용을 대대적으로 보도해 내성결핵의 위험성에 경종을 울렸다. 미 질병통제센터는 지난달 30일 보건당국의 권고를 무시한 채 유럽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앤드류 스피커(31)를 특별기와 특별앰뷸런스까지 동원해 덴버에 있는 내성결핵 전문병원 특별 독방에 수용했다. 변호사라는 스피커의 직업도, 신혼이라는 상황도 전혀 고려되지 못했다.
연방당국의 이런 격리수용 명령은 1963년 한 천연두 환자에게 내려진 이래 44년만이다. 미 질병통제센터와 유럽질병통제센터는 스피커의 좌석 근처에 앉았던 여객기 탑승객들에겐 결핵검진을 받을 것을 권고하는 등 호들갑을 떨었다. 하원 국토안보위는 6일 스피커의 출국 과정과 보건당국의 대응에 대한 청문회까지 열 예정이다.
보건당국의 지시를 어긴 내성결핵 환자에 대한 강제조처는 주정부 차원에선 일상적이다. 4월말 미국 법원은 공공장소에 출입할 때 항상 마스크를 착용하라는 명령을 어겨 감옥병동 독방에 9개월째 수용 중이던 한 러시아계 미국인(27)의 석방 청원을 기각했다. 인권보호 논란이 없지 않았지만, 미국 내 여론은 결핵환자의 자유보다는 공중보건을 우선한다. 미 보건당국은 이번 조처가 2차 약물치료와 발병부위에 대한 수술까지 실시하고도 완치율이 30% 정도인 내성결핵의 확산을 막기 위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렇다고 미국이 결핵국가라는 뜻은 아니다. 지난해 미국의 결핵환자 발생 수는 1만3767명(10만명당 4.6명)으로, 1953년 통계 발표 이래 최저치를 기록했다. 93년 이후 보고된 내성결핵 환자는 49명에 불과하다. 이 가운데 12명이 사망했다.
미국 당국의 이런 ‘이유있는 호들갑’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결핵환자가 가장 많은 한국(2004년 18만4천명)이 본받아야 할 대목이다. 한국에선 매년 3만여명의 새로운 결핵환자가 발생하고 있으며, 매년 3천여명이 결핵으로 사망한다. 죽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내성결핵 환자로 추정될 뿐, 국가적 대책은 고사하고 내성결핵 환자에 대한 통계조차 변변한 게 없다. 결핵은 우리가 애써 모르는 척 하는 사이에 다시 창궐하고 있다. 치료를 게을리해 발생한 내성결핵 환자보다 전염된 내성결핵 환자가 급증하고 있다고 한다. 미 질병통제센터는 지난해 전세계 결핵 보고서에서 2000~2004년 전세계 슈퍼 내성결핵 환자가 전체 결핵환자 가운데 3%에서 11%로 증가했다고 밝혔다. 한국에선 결핵환자의 15%가 내성결핵 환자로 나타났다.
1997년부터 북한에서 결핵퇴치 활동을 벌이고 있는 스티브 린튼 유진벨재단 이사장은 “내성결핵은 더이상 쉬쉬할 문제가 아니다”고 충고했다. 그는 “10년째 벌여온 북한 결핵퇴치 활동도 내성결핵 환자 증가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내성결핵 문제가 심각한 남북한이 손잡고 적극적인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내성결핵은 ‘백약이 무효’인 난치성 전염병이다. 2년 이상의 장기치료가 필요하고, 치료비용도 엄청나게 든다. 퇴치를 위해선 환자의 격리수용과 이들에 대한 치료·생계비 지원, 각 환자에 알맞는 항생제와 치료법 개발을 위한 연구소 설립 등 국가적 관리가 시급하다.
워싱턴/류재훈 특파원 hoonie@hani.co.kr
워싱턴/류재훈 특파원 hooni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