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원 의사절차 표결서 46-53 부결…부시 레임덕 가속 전망
1200만명에 이르는 미국 불법체류자 문제를 해결하려던 조지 부시 미국 행정부의 노력이 또다시 좌절돼 레임덕 현상(임기말 권력누수)이 가속될 전망이다.
부시 대통령과 상원 양당 지도부의 합의로 발의된 이민개혁법안은 이날 상원의 최종 표결을 앞둔 의사절차 표결에서 46-53으로 부결돼 사실상 폐기됐다. 임기 18개월이 남은 부시 대통령이 보수파의 격렬한 반대를 무릅쓰고 이 법안을 다시 의회에 올리기는 불가능하다. <비비시>(BBC)방송은 이날 “빡빡한 정치 일정을 고려하면 내년 부시 대통령 임기내 이민개혁법 재논의는 어렵다”며 “부결은 부시 대통령의 뼈아픈 정치적 실패”라고 평가했다.
부시 행정부가 의회 지도부와 협의해 마련했던 이민개혁법안의 뼈대는 불법체류자 1200만명에게 단계적으로 합법체류 자격을 주고 초청노동자 제도를 도입하는 한편, 국경 경비를 강화하는 내용이었다. 부시 대통령은 상원 표결을 앞두고 하루 종일 상원의원들에게 설득 전화를 걸었고, 카를로스 구티에레스 상무부 장관 등을 상원에 보내 찬성 표결을 부탁했다.
상원 반대표의 대부분은 부시 대통령이 속한 공화당에서 나왔다. 공화당 보수파들은 이민개혁법이 불법체류자들을 사면하고 미국인의 일자리를 빼앗아가고, 임금수준을 떨어뜨릴 것이라고 반대했다.
2004년 재선 뒤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 정책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이민법 개정, 로비제도 개혁법안, 사회보장법 개정안 등 국내 현안에 정책 우선 순위를 뒀으나, 그동안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이민개혁법 좌절로 부시 대통령이 국내 정책에서 정치적 승부를 보려는 시도를 포기하게 될 것”으로 예상했다.
<뉴욕타임스>도 이날 법안 부결 뒤 정치적 파장에 대해 “공화당 안에서 부시 대통령의 권위가 떨어지고 의제 설정 능력이 도전받을 것이며, 민주당도 더 이상 부시 대통령을 겁내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런 지적에 대해 공화당 지도부는 이민개혁법안 부결이 부시 대통령의 실패지, 공화당의 실패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미국과 3200㎞ 국경을 맞댄 멕시코는 법안 부결에 거세게 반발했다. 매년 50만~100만명 가량인 미국 불법 입국자 가운데 상당수가 멕시코를 통해 들어온다. 펠리페 칼데론 멕시코 대통령은 “미국과 멕시코 양국에서 불법이민, 인권침해, 치안불안 등 부작용이 계속될 것”이라며 “법안 부결은 중대한 실수”라고 주장했다. 그는 “미국 경제는 멕시코 이민자들의 노동력 없이 번영하고 발전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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