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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미국·중남미

40년전 미 평화봉사단원들의 ‘아리랑’

등록 2007-10-07 20:36수정 2007-10-08 11:35

1967~69년 한국에서 활동한 평화봉사단(피스코) 3기(K-3)그룹 55명이 지난 10월5일 워싱턴 근교 버지니아주 알렉산드리아의 한 호텔에서 모임을 갖고 있다. 류재훈 특파원
1967~69년 한국에서 활동한 평화봉사단(피스코) 3기(K-3)그룹 55명이 지난 10월5일 워싱턴 근교 버지니아주 알렉산드리아의 한 호텔에서 모임을 갖고 있다. 류재훈 특파원
특파원 리포트
지난 5일 저녁 워싱턴 근교 버지니아주 알렉산드리아의 한 호텔 로비. <산토끼> <갑돌이와 갑순이> <노란샤쓰 입은 사나이> <아리랑> <애국가> 등 한국의 동요와 오래된 가요가 울려퍼지고 있었다.

한국 노래의 주인공은 향수를 달래려는 한국계 미국인들이 아닌 미국인 ‘할아버지·할머니들’이다. 40년전 한국에서 평화봉사단(피스코)으로 청춘을 불태우고 이제 환갑을 훌쩍 넘긴 사람들이다. 1967~69년 한국에서 활동한 평화봉사단 3기(K-3)그룹 88명 가운데 55명이 이날 자리를 함께 했다. 5~7일 파견 40주년을 자축하는 이 모임을 위해 미국 전역과 외국에서 만사를 제쳐놓고 참석했다. 대학을 갖 졸업한 20대 초반의 사진으로 만든 명찰을 가슴에 단 이들은 이 순간만은 40년 전으로 돌아간 듯했다. 기념사진 촬영을 하는 동안 추억 속의 한국 노래가 저절로 입에서 입으로 퍼져 합창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번 모임은 25주년, 35주년에 이어 세번째다.

40년전 미 평화봉사단원들의 한국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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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대학을 갖 졸업한 20대 초반이었던 이들의 한국에 대한 기억은 특별했다. 다른 문화에 대한 경험이 주요동기가 된 이들의 한국생활은 세계를 보는 눈을 뜨고 자신들의 인생에 새로운 계기가 된 인생의 전환점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한국에 영어를 가르쳐주러 갔지만, 활동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변화된 자신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한국인 부인을 맞은 이들도 5명이다. 봉사활동을 마치고 국무부에 들어가 외교관이 돼 다시 한국에서 근무한 사람도 6명이나 된다. 이 모임을 주관한 리처드 크리스텐슨(한국명 임정식·목포제일중, 목포중에서 봉사)은 주한 미대사관 부대사를 거쳐 현재 국무부 인사담당 자문역을 맡고 있다. 아시아전문가인 마크 모어(대구중에서 봉사)는 외교관 생활을 마친 뒤 우드로 윌슨 센터의 아시아프로그램 책임자로 일하고 있다.


평화봉사단 활동을 계기로 한국학 연구자의 길로 들어선 브루스 커밍스 시카고대 교수도 3기다. 그는 6일 하루 늦게 합류했다. 닐 워터스(광주서중에서 봉사) 미들버리대 교수는 한국한 석사학위까지 받았지만, 일자리 때문에 일본학으로 전공을 바꿨다며 아쉬워했다. 연극의상 전문가인 부인 린다 워터스(광주 중앙여고·서울 진명여고에서 봉사)는 한국의상을 무대의상에 활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봉사활동 도중 만나 결혼한 두쌍 가운데 한쌍이다.

티모시 오브라이언(한국명 오덕현·군산상고에서 봉사)은 변호사가 돼 서울에서 법률자문을 하고 있다. 유럽 미술을 전공했던 로버트 모우리(한국명 마우리·서울농대에서 봉사))는 아시아 미술 쪽으로 전공을 바꿔 하버드대 미술관의 아시아담당 큐레이터가 됐다. 그는 미술관에 한국 소장품이 800여개나 된다고 자랑했다. 리처드 윌리는 논산 생활의 경험을 바탕으로 지은 <3천궁녀의 축제>란 소설로 데뷔해 유명한 소설가가 됐다. 마르샤 번스틴(한국명 임정순·광주여중에서 봉사) 전 시카고대 교수는 한국을 다시 찾아 둘째딸을 입양하기도 했다.

파견되기 전 한여름 석달 동안 펜실베니아의 스키리조트에 모여 한국말을 처음 배우고 찾아간 한국에서 낯설고 물설은 생활이 쉽지만은 않았다. 10여명의 동료들은 2년 기한을 못 채우고 먼저 한국을 떠났지만, 이 가운데는 기한을 연장하거나 두번 이상 한국에서 활동을 한 이들도 10여명에 달했다. 이들 대부분은 이후 한국을 적어도 한번 이상 다시 찾았고, 당시 영어를 가르쳤던 학생들과 연락을 계속을 하는 이들도 많았다. 환갑을 넘긴 나이에도 이들은 미국 주류사회에서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이들은 지한파·친한파임을 자랑스러워했고, 3기만이 예외적으로 특별한 게 아니다.

평화봉사단은 존 에프 케네디 대통령이 후보 시절인 1960년 10월14일 미시건 대학 연설에서 말한 “인생의 2년을 개도국에서 봉사해 세계평화에 기여하자”는 공약에서 출발했다. 케네디 대통령은 취임연설에서 평화봉사단 공약 이행을 다짐하면서 “조국이 여러분에게 뭘 해줄까를 묻지 말고, 여러분들이 조국에 무엇을 할 수 있을가를 물어보라”고 명언을 남겼고, 공약은 실행에 옮겨졌다. 뉴프런티어 정신의 세례를 받고, 반전·평화주의에 관심이 많았던 당시 젊은이들에게 평화봉사단은 새로운 도전이었다. 61년 가나·탄자니아를 시작으로, 47년 동안 139개국에 18만7천명이 파견됐고, 현재 73개국에서 7749명이 활동 중이다.

류재훈 특파원
류재훈 특파원
한국엔 66~81년 3200여명이 다녀갔다. 미 제국주의의 스파이라는 비판도 없지 않았지만, ‘독립적인 연방기구’인 평화봉사단이 꾸준한 봉사를 벌임으로써 성공적인 해외 봉사활동의 귀감이 되고 있다.

이디오피아 여행 중 농업 관련 봉사활동을 하는 한국국제협력단(코이카)의 젊은 봉사단원을 만난 적이 있다는 전직 외교관 더글러스 맥닐(한국명 이일덕·경북 영천중고에서 봉사)은 “젊은이들의 해외 봉사활동은 ‘우물안 개구리’를 벗어나는 좋은 기회”라며 “한국도 세계화에 발맞춰 해외봉사단원 파견을 더 확대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워싱턴/글·사진 류재훈 특파원 hooni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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