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발령은 사형선고” 미 외교관들 반발
국무부, 지원자 급감에 ‘근무 후보자’ 발표
위험지역 기피 겹쳐 “강제발령 안돼” 반기
위험지역 기피 겹쳐 “강제발령 안돼” 반기
“잠재적인 사형선고나 다름없다.” “내가 죽거나 다치면 아이들은 누가 키운다는 말이냐.”
미국 외교관들이 국무부의 이라크 강제 발령에 대해 집단적으로 반발하고 나섰다. 미국 외교관들이 국무부의 인사 결정에 집단적, 공개적으로 반기를 든 것은 초유의 사태다.
<에이피>(AP) 통신 등은 1일 미 외교관 300여명이 31일 워싱턴에서 긴급 모임을 갖고, 외교관들의 이라크 강제 근무 방침을 결정한 국무부를 성토했다고 보도했다. 앞서 지난달 26일 해리 토머스 국무부 인사담당 국장은 내년에 공석이 될 바그다드 미 대사관과 지방재건팀의 48개 직책을 메우기 위해 250명의 ‘우선 후보 외교관들’을 선발해 통보했다.
미국은 베트남 전쟁 때와 70~80년대 몇몇 아프리카 근무지를 제외하고는, 외교관들의 해외 근무를 자원자로 충원해 왔다. 그러나 최근 이라크가 기피 근무지로 전락하면서 자원자들이 급감하자, 궁여지책으로 강제 발령 카드를 꺼내 들었다. 일단 이라크로 발령나면 특별한 의학적 사유나 개인 사정이 없는 한, 거부할 방법은 없다. 발령을 거부하면 해고 등 중징계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미 외교관들의 이번 ‘항명 사태’는 이런 불이익을 피하기 위한 집단적 자구책으로 풀이된다. 베테랑 외교관인 잭 크로디는 이날 모임에서 “이라크로 가겠다고 자원하는 것과 이라크에 강제 발령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라며 “세계 어떤 나라에서든 이 지경이면 대사관을 폐쇄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참석자들은 크로디의 발언에 큰 환호를 보내면서 공감을 나타냈다. 미 외교관들의 권익단체인 외교업무협회(AFSA) 회장을 맡고 있는 존 널랜드도 “강제 발령 방침을 신문을 보고 알았다”며 정책 결정 과정에서 당사자들의 의견 수렴이 없었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또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이 부하 외교관을 위해 일하고 있다는 응답은 12%에 불과하다”는 회원들 대상의 최근 설문조사를 거론하며 상관에게 직격탄을 날리기도 했다.
강제 발령을 주도한 토머스 국장은 모임에서 “우리의 의무를 회피할 수 없다, 우리는 세계 어디든 갈 수 있다는 것에 동의한 것 아니냐”고 반박했다. 숀 매코맥 국무부 대변인도 “일부 외교관들의 감정적 반응을 이해할 만하다”면서도 “그러나 이라크에서 미국의 임무는 국무부가 아니라 대통령이 결정한 국가정책”이라고 말했다.
이라크에 근무하는 미 외교관은 해외 근무수당을 후하게 받는다. 최근 요새와 같은 대사관도 신축됐다. 그렇지만 늘 신변의 위험에 노출돼 있으며, 배우자나 아이들과도 떨어져 살아야 한다. 이용인 기자 yy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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