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인권운동가들이 지난달 법무부 앞에서 중앙정보국의 가혹행위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며 물고문 장면을 연출해 보이고 있다. 워싱턴/AFP 연합
하원, 가혹행위 금지·제네바협정 준수 법안 통과
정부 “테러범 적발 기여”…물고문 관행 시인한 셈
정부 “테러범 적발 기여”…물고문 관행 시인한 셈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테러 용의자에 대한 물고문 등 가혹행위를 둘러싸고 백악관과 의회가 또 한차례 격돌할 전망이다.
미 하원은 13일 물고문(waterboarding) 등 가혹한 심문기법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은 2008년 정보수권법안을 표결에 부쳐, 222 대 199로 통과시켰다. 이 법안은 △물고문을 금지한 군 교범을 따를 것 △모든 심문관에게 전쟁포로에 관한 제네바 협정을 엄격하게 준수할 것 △성적 모욕, 처형 위협, 군견 동원 위협, 음식·의약품 지급 보류를 금지할 것 등을 규정하고 있다.
민주당 주도 하원은 지난주 중앙정보국의 물고문 비디오테이프 파기 사실이 폭로돼 인권단체 등의 비난이 고조되자 상원과 협의해 법안 통과를 서둘렀다. 이 법안은 또 △이란과 북한의 핵 프로그램에 대한 정기적인 보고 △미 16개 정보기관의 활동을 감독할 감사관의 설치 등도 담았다. 실베스터 레이스(민주, 텍사스) 하원 정보위원장은 “정보기관에 대한 의회의 감독을 강화하는 것”이라며 법안의 의미를 설명했다.
휴먼라이츠워치를 비롯한 인권단체들은 “중앙정보국이 비디오테이프를 파기한 것은 세계인들이 고문이라고 보는 관행을 숨기려는 것”이라며 “이번 입법은 그런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라크 아부그라이브교도소 고문 문제를 다뤘던 폴 컨 퇴역 장성은 “군과 중앙정보국이 이중의 심문 기준을 갖는 것은 신뢰와 책임의 문제를 안고 있다”며 “군의 심문 기준으로 단일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컨을 포함한 퇴역장성 28명은 심문기법 단일화를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러나 백악관은 “중앙정보국이 물고문을 금지한 군 교범에 따르도록 하는 것은 알카에다 테러범에게서 필요한 정보를 얻는 합법적 심문을 수행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라며 거부권 행사를 위협했다. 마이클 헤이든 중앙정보국장은 “중앙정보국의 심문프로그램은 소규모(2002년 이후 100명 이하)이고 완전히 합법적”이라면서도 “가혹한 심문기법 사용으로 알카에다의 작전이나 테러 기도들을 적발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고 주장해 물고문 등을 관행적으로 하고 있음을 사실상 인정했다.
한편, 마이애미 연방법원은 이날 지난해 6월 시카고시에 위치한 110층짜리 고층건물 ‘시어스타워’ 폭파를 모의했다는 혐의로 체포된 6명에 대해 미결정 심리 판결을 내리고, 1명에 대해선 무혐의 결정을 내렸다. 검찰의 항소가능성은 열려 있으나, 이번 판결로 이들의 체포 당시 9·11 이후 자생적 테러조직을 검거했다고 자랑했던 부시 행정부는 또 한차례 타격을 받게 됐다.
워싱턴/류재훈 특파원 hooni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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