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러리 ‘킹 목사-오바마 대비’ 등 발언에 흑인사회 거센 반발
일부 주 ‘오바마 지지’로 급선회…‘백인 우월주의’ 자극 우려
일부 주 ‘오바마 지지’로 급선회…‘백인 우월주의’ 자극 우려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버락 오바마(46) 상원의원이 급부상하면서 미국 정치의 금기사항인 흑인 문제가 2008년 대선의 시한폭탄이 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뉴햄프셔주 예비선거(프라이머리) 선거운동 기간에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과 남편인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한 발언이 도화선이 되고 있다. 힐러리는 오바마가 주장하는 변화에서 “말보다 행동이 중요하다”는 점을 지적하려고 “존 에프 케네디 대통령과 마틴 루서 킹 목사가 중요하고 위대한 연설을 했지만, 변화는 린든 존슨 대통령의 민권법에 의해 이뤄졌다”고 말했다. 클린턴 전 대통령도 오바마가 말하는 ‘희망’이 “내 평생 들어보지 못한 ‘동화 같은 얘기’”라고 비난했다.
힐러리를 지지하는 흑인들도 발언 자체에 대해서 유감을 표시할 정도다. 힐러리 선거운동 컨설턴트인 빌 린치는 11일 <폴리티코>와 한 회견에서 클린턴 대통령의 발언을 “실수”라고 규정하면서 “전국의 친지들로부터 발언에 대한 우려를 표하는 전화를 여러 통 받았다”고 말했다. 흑인 민권운동가 출신으로 사우스캐롤라이나의 유일한 흑인 하원의원인 짐 클라이번은 <뉴욕타임스>와 한 회견에서 “중립을 재고할 수 있다”며 불편한 심정을 밝혔다.
오바마 지지자들의 분노는 분명하다. 에밀 존스 일리노이주 상원의장은 “르윈스키 스캔들로 어려움을 겪을 때 그를 구해준 것은 흑인 사회였다”며 “그런 그가 그런 발언을 한 것은 매우 불행한 일”이라고 비난했다. 흑인 민권운동가인 제시 잭슨 목사는 대변인 성명을 통해 “오바마가 아이오와에서 승리를 거둔 이후 냉소주의자들이 희망보다는 불안을 부추기는 구역질 나고 점잔 빼는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며 “그런 반동적이고 깔보는 식의 발언은 그만둘 것을 바란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사우스캐롤라이나주의 흑인 라디오방송과 인터넷블로그, 케이블 텔레비전에선 흑인들의 분노감이 쏟아지고 있다.
오바마와 클린턴 진영은 흑인 전체 문제로 확대되는 것을 우려해, 공식적으로는 인종문제와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발언을 자제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일부 언론들은 뉴햄프셔에서 힐러리의 신승이 이른바 ‘브래들리 효과’라고 분석하는 등 흑인 문제는 계속 내연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브래들리 효과는 백인들이 인종적 편견이 있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주기 싫어 여론조사 때 본마음을 숨기는 것을 뜻하는 말로, 1982년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에서 지지율이 두자릿수로 앞서던 톰 브래들리 로스앤젤레스 시장이 마지막에 백인 후보에게 패배해 붙여진 말이다.
이런 흐름 속에 지난해까지 힐러리가 우위였던 사우스캐롤라이나는 오바마 쪽으로 완전히 넘어갔다. 흑인 유권자가 3분의 1을 차지하는 앨라배마주도 오바마 지지로 완전히 역전됐다. 오바마의 당선 가능성과 흑인들의 오바마 지지가 급증하는 상황은 흑인이 전체 인구의 13%에 불과한 소수 약자라는 점에서 ‘브래들리 효과’와 같은 백인우월주의의 후폭풍이란 우려도 낳고 있다. 워싱턴/류재훈 특파원 hooni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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