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미국 대선
카리스마 간데없고 평범한 운동원 전락…유세장도 ‘썰렁’
한때 최고의 민주당원, 가장 인기있는 살아있는 전직대통령으로 청중을 몰고다녔던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한낱 초라한 선거운동원으로 전락했다.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이 “선거운동 최고자산”이라며 자랑했던 빌 클린턴의 이런 모습은 날개 없이 추락한 힐러리의 위상을 그대로 보여준다.
부인의 선거운동에 올인하면서 그의 국내외적 명성은 흠집난 지 오래됐다. 사실상 마지막 승부처인 텍사스와 오하이오에서 힘을 보태고 있지만, 그의 입은 사실상 재갈이 물린 것이나 다름없다.
그의 최근 연설을 보면, 청중을 사로잡던 이전의 카리스마가 담긴 달변은 찾아볼 수 없다. 지난달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에 대해 얼굴을 붉히며 비난하던 ‘광분’도 사라졌다. 오바마에 대한 인종적 비난이 역풍을 맞은 이후 최대한 몸을 낮추고 언론에 노출을 극도로 피하면서 문제됐던 정치평론을 최대한 자제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빌 클린턴은 27일 텍사스주 오스틴에서 200~300명에게 자신의 치적을 언급하는 대신 힐러리의 경력과 능력, 공약을 소개하면서 차가운 이미지의 힐러리의 인간적인 면을 부각시키는 데만 주력했다. 그의 연설 도중에 자리를 뜨는 청중들도 눈에 띄었다고 <에이피통신>이 보도했다. <뉴욕타임스>는 25일 오하이오 랭카스터 고등학교 체육관에서 열린 유세장도 반쯤 비어 있었다고 전했다.
빌 클린턴의 이런 위상은 최근 여론조사 결과에도 나타난다. <뉴욕타임스>와 <시비에스>가 조사한 여론조사에서 빌 클린턴 때문에 힐러리에게 표를 던지겠다고 하는 유권자는 22%인 반면, 표를 던지지 않겠다고 하는 유권자도 22%였다. 지난해 12월 조사에선 이런 응답이 44% 대 7%였다.
<뉴욕타임스>는 빌 클린턴의 연설이 힐러리의 연설보다 설득력이 있다고 응답하는 유권자들도 “클린턴 집안이 4~8년 더 백악관을 장악하는 것이 미국을 위하는 길인지 잘 모르겠다”고 말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제2의 케네디’로 불리며 미국의 새로운 희망으로 떠오른 버락 오바마의 위세 앞에 빌 클린턴도 부담스런 구시대 정치인으로 비치고 있는 것이다.
류재훈 기자 hooni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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