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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미국·중남미

아내에게 바치는 ‘성추문’…위선의 면죄부

등록 2008-03-16 19:23수정 2008-03-16 19:26

아내에게 바치는 ‘성추문’…위선의 면죄부
아내에게 바치는 ‘성추문’…위선의 면죄부
특파원 리포트
스피처·크레이그·클린턴 등
사과 회견마다 부인 떠밀기
‘가족가치’ 포장, 위기 탈출

엘리엇 스피처 뉴욕주 지사, 래리 크레이그 상원의원, 데이비드 비터 하원의원, 짐 맥그리비 뉴저지주 지사, 빌 클린턴 대통령….

현직에서 성추문을 일으킨 사람들이란 게 이들의 공통점이다.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고 사과하는 기자회견장에 부인을 대동한 점도 똑같다.

지난 1주일 동안 미국 정치권과 언론을 휩쓴 스피처의 성매매 추문은 미국 정치문화의 단면을 그대로 보여줬다. 미국 언론은 대선 경선 보도의 식상함을 만회하려는 듯 스피처 추문을 모조리 까발렸다. 이틀 만에 스피처의 사임 항복을 받아냈지만, 이후에도 ‘월가 부패 추방의 십자군’을 자임하며 도덕성과 개혁을 표방했던 스피처의 위선을 폭로하는 기사는 끊이지 않았다.

이번 사건은 동시에 미국 정치인들이 내세우는 ‘가족 가치’의 위선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줬다. 스피처와 같이 하버드 법대를 나와 잘나가는 변호사로 활동했던 부인 실다 월 스피처는 10·12일 두차례 스피처의 기자회견에 동행했다. 정치인 부인의 의무라고 하기엔 너무 가혹한 형벌이었다. 실다는 스피처가 짧은 사과성명을 읽어내려가는 동안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몇차례 고개를 들었을 때의 표정은 처참했다. 스피처에 대해 신랄한 비난를 쏟아내던 언론들도 어김없이 실다를 동정하는 기사를 내보냈다.

같은 경험을 했던 맥그리비 주지사의 부인 디나 매토스 맥그리비는 <시엔엔> 방송 회견에서 스피처 부인을 보고 “마음이 찢어졌다”고 토로했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털어놓으면서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공개적으로 배신당했다는 것을 알기 위해 세상 앞에서 조롱거리가 되고 수모를 당해야 했다”고 말했다.

힐러리를 옆 자리에 세웠던 빌 클린턴과는 달리 스피처는 자리를 지킬 수 없었다. 그의 지지자는 세 딸과 가정을 지키려던 부인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한 정치학자는 부끄러운 일을 저지른 미국 정치인들이 힘든 자리에 부인을 동행하는 이유에 대해 “부인도 용서했다”는 것을 보여줘, 동정과 용서를 구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선 과정에서도 후보들은 승리와 패배의 순간에 배우자와 함께 하는 모습을 어김없이 연출한다. 미국인들이 소망하는 화목하고 행복한 가정을 과시하려는 것이다. ‘수신제가 치국평천하’의 ‘미국식 변용’이라고 할 수 있다. 바람둥이였던 존 에프 케네디 전 대통령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가족을 등장시키는 등 이상적인 가족과 같이 살고 있다는 것을 홍보하는 데 엄청난 신경을 썼다.

보수적 공화당뿐 아니라 민주당 지지 유권자들에게도 가족이 가장 중요한 가치의 하나로 인식되는 데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유에스에이투데이>와 갤럽의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공화당 지지자의 86%, 민주당 지지자의 71%가 대통령 선택의 중요한 요소로 가족의 가치를 꼽았다.

워싱턴/류재훈 특파원
워싱턴/류재훈 특파원
가족의 가치를 중시하는 미국의 정치문화가 계속되는 한, 제2, 제3의 실다가 나올 것이다. 혼자 심판대에 오를 배짱이 없는 미국 정치인들이 무고한 부인들에게 ‘고통스런’ 동참을 요구할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 정치인들이 이런 것만은 배우지 않는 게 그나마 다행이다.

워싱턴/류재훈 특파원 hooni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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