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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미국·중남미

“21세기 세계질서, 다극 넘어 무극적 상황”

등록 2008-04-13 22:21수정 2008-04-14 00:55

하스 미 외교협회 회장
“종교·테러단체 등 영향력 커져…미 독주시대 끝나”
‘예방적 선제공격’ 반대…‘다자주의 협력’ 해결책

“21세기 국제질서는 일극적 또는 다극적 질서가 아니라 수십 개 행위주체들이 다양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무극적(nonpolar)’ 질서다.”

미국의 외교안보 전문가 모임인 외교협회(CFR)의 리처드 하스 회장은 격월간 <포린어페어스> 5~6월호에 기고한 ‘무극적 시대’란 제목의 글에서 “현재의 세계는 다극적으로 보이지만 1차대전 이전과 같은 고전적 의미의 다극적 시대와는 다르다”고 주장했다. 하스는 “국제관계의 주요 행위자였던 민족국가(nation state)가 다양한 행위주체들의 도전을 받아 권력 독점을 상실했고, 이런 행위주체들의 구실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라고 진단했다. 그는 조지 부시 1기 행정부에서 국무부 정책실장을 지내는 등 실무 경력도 갖춘 미국 외교정책의 전략사상가로 불린다.

그는 다양한 행위주체의 예로 △지구적 국제기구(국제연합·국제통화기금·세계은행 등) △지역적 국제기구(아랍연맹·아세안 등) △기능적 국제기구(국제원자력기구·상하이협력기구 등) 등을 들었다. 민족국가 내부의 주나 도시(캘리포니아주·뉴욕·상하이 등), 금융·에너지·제조업 분야의 다국적기업, 세계적 언론(시엔엔, 비비시, 알자지라 등), 민병대(하마스, 헤즈볼라, 탈레반 등)와 같은 범주는 물론, 정당·종교단체·테러단체·비정부기구 등도 그가 말하는 행위주체에 해당한다. 이런 주체들의 활동으로 오늘날의 세계는 집중되기보다는 분화되고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하스는 비록 유일 초강국 미국에 맞설 만한 강대국이 등장하지 않았지만, 미국은 정치·군사·외교·경제적으로 도전을 받고 있으며, 미국의 일극적 질서는 끝났다고 단언했다. 그는 지역 강국들의 경제발전과 함께 미국의 이라크·에너지·경제 정책 등의 실패가 이런 세력의 등장을 가속화시켰다며, 지금과 같은 상황은 세계화가 빚어낸 필연적 결과물이라고 분석했다.

하스는 더욱더 무극적으로 치닫게 될 세계질서는 미국뿐아니라 세계에 부정적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특히 예방적 선제공격 등은 대량살상무기 확산을 부추기고 자위 수단 이외의 군사력 사용에 관한 오랜 규범을 약화시키기 때문에 무극적 세계질서를 더욱 불안정하게 만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다양한 행위주체가 영향력을 행사하고 상대적으로 결과를 예측하기 힘든 이런 상황은 외교를 더 어렵게 만들 것이라며, 피아를 구분하기 힘들어 동맹관계의 중요성도 줄어들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무극적 시대의 해법으로 다자주의적 협력을 제시했다. 그는 다자주의적 협력주의가 성공하려면 강대국 이외의 다른 행위자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선 유엔 안보리와 주요 8개국(G8) 회의 등의 개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다자협력주의를 표방하는 국가와 다른 행위자를 모아 핵심그룹을 만드는 것이 ‘조화된 무극적 질서’를 형성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워싱턴/류재훈 특파원 hooni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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