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준 논란다른 나라 구제조처엔 ‘딴죽’…그때그때 달라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에는 구제금융을 하지 않아 파산신청에 이르게 한 미국 정부가 보험회사 에이아이지에 대해서는 이번에 850억 달러의 구제금융을 통해 살리는 길을 택했다. 미국 정부는 왜 두 회사를 달리 취급한 것일까?
미국 재무부와 연방준비제도는 리먼을 구제하지 않은 이유를 “부실 금융기관에 대한 안일한 구제가 도덕적 해이를 조장할 우려가 높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물론 이런 주장은 지난 3월 베어스턴스 자산에서 생기는 손실을 290억달러까지 보전해주기로 하고 베어스턴스를 제이피모건 체이스에 넘긴 것과 배치되는 것이었다.
어쨌든 미국 정부가 리먼에 대해 취한 조처대로라면 이번에 에이아이지에 대해서도 구제조처를 취하지 않는 게 일관된 행동이다. 하지만, 미국 정부는 또 한번 태도를 바꿨다. 연준의 성명 등을 종합해보면, 미국 정부의 이번 에이아이지 구제조처는 “죽게 내버려 두기엔 너무 크다”는 이른바 ‘대마불사’ 논리가 작용한 것으로 해석된다.
실제로 세계 최대 보험사인 에이아이지는 자산이 1조1천억달러에 이르고 세계 130개국에 7400만명의 고객을 갖고 있다. 이들 고객의 재산이 걸려 있는데다, 에이아이지 관련 채권 등을 보유한 금융기관들도 많다. 그런 에이아이지가 몰락할 경우 세계 금융시장에 큰 파장이 불어닥칠 가능성도 컸다. 반면, 리먼은 상대적으로 자산규모가 작아 시장이 파산 충격을 감당할 수 있다고 판단했을 법하다.
연준은 “이번 구제금융은 에이아이지 및 계열기관의 자산을 담보로 한다”며 “납세자의 이익은 구제금융 대출에 앞서 명시한 주요 조건에 의해 보호된다”고 밝혔다. 납세자의 돈을 쓰는 것은 아니라는 해명이다. 하지만 이번 구제금융이 잠재적인 손실 위험을 감수한 것은 분명하다.
미국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 등을 앞세워 다른 나라의 금융기관이나 부실기업에 대해서는 ‘도덕적 해이’를 조장한다며 구제조처에 제동을 걸어왔다. 그런 방식으로 월가의 자본이 헐값에 인수할 길을 열었다. 그런 미국 정부가 자국 안에서는 다른 잣대를 들이댄 것이다. 그것도 ‘그때그때 달라요’식으로 말이다.
정남구 기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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