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대학을 졸업하는 2년 뒤에 은퇴하려던 낸시 데이비스(59)는 최근 은퇴 시기를 70살로 늦춰 잡았다. 월가에서 벌어진 사상 초유의 금융위기 때문이다. 데이비스는 “정말 나를 무기력하게 만든 사건”이라고 털어놨다.
<월스트리트저널>은 22일 “최근 미국의 금융위기가 은퇴를 코 앞에 둔 ‘베이비붐’ 1세대들의 은퇴 계획에 브레이크를 걸고 있다”고 보도했다. 금융시장에 투자한 종잣돈은 계속 줄어들고 집값은 여전히 추락하고 있는 만큼, 은퇴를 서두르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다. 재정설계가 헬가 커베트는 “은퇴자들의 노후에 대한 기대치가 점차 비현실적인 것으로 변하고 있다”며 “더 많은 사람들이 은퇴 시기를 늦추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인들의 평균 은퇴 연령은 63살이다.
노동자연금연구소(EBRI)가 지난 4월 실시한 조사를 보면, 55살 이상 노동자의 60% 가량의 자산 총액은 10만달러 이하다. 4분의 1에도 못미치는 23%만이 24만달러 이상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보스턴대학 은퇴조사센터의 알리시아 뮤넬은 “저축에만 의존하지 않고, 노후연금인 401(k)의 수익률을 어느 정도 보장받기 위해선 더 오래 일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 5월 미국은퇴자협회(AARP)의 조사에선, 45살 이상 노동자의 27%가 경기침체로 인해 퇴직시기를 늦추겠다고 답했다.
이미 은퇴한 이들도 다시 일자리를 찾아 나서고 있다. 퇴직자들의 온라인 구직업체인 ‘리타이어먼트잡스닷컴’은 “지난 한 주 동안 사이트의 온라인 이력서 코너에 들른 방문자 수가 이전보다 2배나 늘었다”고 전했다. 파트타이머로 일하던 퇴직자들이 다시 정규직을 찾아나서는 사례도 늘고 있다.
최근 금융위기에 가장 직격탄을 맞은 계층이 은퇴를 앞뒀거나 은퇴한 노인계층이며, 이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기회도 다른 연령대에 비해 적다고 <뉴욕타임스>는 22일 전했다. 노동자연금연구소의 최근 조사를 보면, 퇴직자의 39%가 자산이 바닥나는 시점보다 더 오래 살 것 같다고 응답했다. 지난해 29%에서 10%포인트나 증가했다. 평균 수명은 길어진 반면, 경제적 리스크는 커져 퇴직자들이 2차 세계대전 이래 가장 궁핍한 생활을 겪게 됐다고 신문은 분석했다.
황보연 기자 whyn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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