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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미국·중남미

부통령 후보 토론, 싱겁게 끝난 90분간 ‘대리전’

등록 2008-10-03 19:16수정 2008-10-03 22:49

페일린, 암기자료 충실…참신성 강조
바이든, 말아끼고 매케인 공격 중점
관심을 모았던 미국 대선의 부통령 후보 토론은 의외로 싱겁게 끝났다.

조지프 바이든 민주당 후보와 세라 페일린 공화당 후보는 2일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의 워싱턴대에서 열린 90분간 토론에서 몇차례의 날선 공방이 없지는 않았지만 충돌은 거의 없었다. 페일린은 집중훈련으로 암기한 발언자료에 충실했고, 바이든은 장광설과 상대를 무시하는 태도를 피하려고 말을 아꼈다.

페일린은 ‘하키맘’의 보통사람들 화법으로 토론에 임했다. 페일린은 그동안 언론과 회견에서 회피적인 답변과 더듬거리는 발언으로 우스갯거리가 됐던 때와는 분명히 다른 모습을 보였다. 페일린은 토론에 앞서 인사를 나누면서 “조라고 불러도 되죠”라는 기습적인 질문을 던져, 바이든으로부터 마지못한 수락을 받아냈다. 시종 도전적 정치신인의 모습을 보이려고 노력했다. 반면 바이든은 과거 토론과 유세에서 열정적이고 장광설을 늘어놓던 것과는 달리 의도적으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페일린이 아니라 매케인을 공략하는 전략으로 맞섰다.

이날 토론은 오바마와 매케인의 대리전에 가까웠다. 두 사람 모두 대선후보 저격수라는 부통령 후보 본래의 임무에 충실했다. 바이든은 오바마가 변화의 선도자이며 매케인은 부시의 후계자라는 점을 집중적으로 물고 늘어졌다. 페일린은 매케인이 ‘이단아’(maverick)이고 자신들은 ‘이단아팀’이라는 점을 부각시키려 노력했다.

경험에서 밀린 페일린에게 위기가 없지는 않았다. 가끔 반복적인 답변이 이어졌고, 구제법안에 대한 답변이 곤궁할 때는 자신이 잘 아는 에너지정책으로 화제를 돌리는 등 편법을 부리기도 했다. 바이든은 페일린의 이런 편법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으나, 사회자인 <피비에스>(PBS) 방송의 흑인 여성앵커 그웬 아이필은 토론에 개입하지 않아, 논지를 벗어난 페일린은 궁지를 벗어났다.

후보간 질의응답이 허용되는 맞장토론이 배제되고 90초간의 짧은 답변만을 허용한 토론의 형식도 페일린에게 도움이 됐다. 이런 토론 형식은 경제·외교 문제에 깊은 이해가 부족해 답변요지를 충실히 외울 수 밖에 없었던 페일린의 약점을 감안해, 공화당이 관철시킨 것이다.

그러나 토론 후반에 들어서며 페일린은 매케인의 논리를 가끔 자의적으로 해석하며 흔들리는 대목도 없지 않았다. 그는 “이란은 우리가 핵무기·핵에너지를 허용해줘야 할 나라가 아니다”고 말해, 이란에게도 보장된 ‘평화적 핵에너지 이용’을 부정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그는 또 “우리가 보유한 핵무기는 억지를 위해 사용되는 것이므로 안전하지만, 김정일 치하의 북한과 같은 나라들에 대해서는 우리가 경제제재를 가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며 핵무기 사용을 당연시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지만 추가 질문은 없었다.

이날 토론은 민주당과 공화당 모두에게 또 한차례 서로 승리를 주장할 명분을 제공하면서 틀에 박힌 토론의 한계를 보여줬다. 특히 페일린은 기대치가 낮은 시험대를 통과함으로써, 자질시비를 누그러뜨리게 됐다. 후보간의 맞장토론이 벌어지는 7일과 15일에 열릴 2·3차 대선후보 토론은 이번과는 다른 분명한 승부가 기대되고 있다.


워싱턴/류재훈 특파원 hooni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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