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우지수가 7.33% 폭락한 9일 미국 뉴욕 증권거래소에서 한 거래인이 실망한 듯 두 손을 머리에 올려놓고 있다. 뉴욕/ AP 연합
“이런 순간을 볼 거라 생각도 못했다. 아버지가 얘기했던 대공황 때 같다.”
“1929년에 10살인 사람은 지금 거의 아흔 살이다. 그래서 (대공황이) 우리 기억 속 한 부분이라고 여기긴 어려웠다. 지금 같은 상황이 오래 간다면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는 기억이 될 것이다.”
미국 <뉴욕 타임스>의 경제부 기자인 루이스 우치텔과 플로이드 노리스 금융부 선임기자는 10일(현지시각) ‘우울한 과거의 메아리’란 제목의 동영상 기사에서, 지금의 금융위기를 자본주의 경제사에서 가장 참혹했던 1930년대의 대공황과 비교했다. 70년이 흐른 지금 대공황의 유령이 다시 세계를 배회하고 있다.
9일 미 증시의 다우지수는 7.33% 폭락했다. 최근 7거래일 연속 하락은 미 주식시장 시가총액의 20%를 증발시켰다. 다우지수는 올 들어서 35.3% 하락해, 1937년 당시 하락폭인 32.8%를 이미 넘어섰다. 에스앤피(S&P)500지수는 지난 1년 동안 42%나 추락했다. 미 증시는 대공황이 한창이던 1931년 한 해 동안의 낙폭(52.7%)에 점점 근접해가고 있다.
1929년 10월29일 미 증시의 대폭락을 신호탄으로 한 대공황은 은행과 주식시장의 몰락에서 비롯됐다는 점에서, 지금의 금융위기와 닮은 꼴이다. 대처법에서도 자기 치유 능력을 잃은 시장을 구제하기 위해서 한동안 상상할 수 없었던 적극적인 방식으로 국가가 시장에 개입하고 있다는 사실도 대공황과 흡사하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연준)가 지난 7일 기업어음(CP)을 발행 기업으로부터 직접 매입하겠다고 발표했을 때, 미국 언론들은 “1930년대 이후 처음”이라고 전했다. 또 헨리 폴슨 재무장관이 9일 지분을 직접 사들여 은행을 국유화 또는 부분 국유화할 수도 있다고 밝힌 것도, 대공황 대처법 중 하나다. 1990년대 금융위기를 겪던 스웨덴이 이와 같은 방법으로 위기를 해결했고, 영국 정부도 최근 88억달러어치의 은행 지분을 직접 매수하기로 했다. 이런 방식은 모두 1930년대 초 대공황을 겪던 미 정부가 재건금융공사(RFC)를 설립해, 썼던 방식들이다.
특히 정부가 나서 보호대상이 아닌 예금까지 모두 보호하겠다고 밝힌 독일·아이슬란드 등의 조처는 대공황 때 중요한 대처법 가운데 하나다. 정부가 은행의 실패에 따른 고객 손실을 모두 보장해주겠다는 것이다. 미국도 실행을 검토 중인 이 조처는, 자유시장주의의 상징인 미국에서 오랫동안 상상하기 힘든 사회주의적 성격이 짙다.
하지만 아직 실물경제까지 대공황과 비교하는 것은 무리다. 1932년 미국의 경제성장률은 -13%를 기록했고, 이듬해 실업률은 25%를 기록했다. 지난 해 말 미국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0.2%)을 기록하고, 올 3, 4분기의 마이너스 성장이 예상되지만, 아직 실물경제가 공황으로 치닫는 수준은 아니다. 미국의 현재 실업률도 6.1%로 높은 편이지만, 대공황에 비할 건 아니다. 모건스탠리의 세이즈 스테판 젠 이코노미스트는 “지금 실물경제의 선택은 경기후퇴로 가든지 아니면, 대공황으로 가든지 둘 중 하나”라고 말했다고 <비즈니스위크>가 9일 전했다.
류이근 김외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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