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당선 등 계기 ‘인종증오’ 범죄 급증
미국 루이지애나의 작은 마을에 사는 주디 로빈슨(58)은 대통령 선거가 있기 몇 주 전 버락 오바마 지지 푯말을 집 앞에 세워놓았다. 할로윈 축제 다음날인 지난 1일 아침 로빈슨은 집 뜰에 ‘KKK’(백인우월주의집단 큐 클럭스 클랜의 약자) 석자가 스프레이로 쓰여 있는 것을 발견하고선 깜짝 놀랐다. 흑인인 그는 “케이케이케이를 옛날 일로만 알았는데, 이젠 길에서 사람을 만나도 그가 케이케이케이 단원이 아닐까 하는 의문을 품게 된다”며 “마을이 무서워졌다”고 <시카고 트리뷴>에 말했다.
사상 첫 흑인 대통령이 탄생한 뒤 미국 전국 각지에서 인종차별적인 낙서와 목을 매단 흑인 인형 등이 발견되고 흑인들에 대한 살해 위협이 잇따르는 등 백인우월주의자들의 ‘증오 범죄’ 행위가 크게 늘어나고 있다고 <시카고 트리뷴>이 23일 보도했다.
증오 범죄 집단을 관찰해오고 있는 남부빈곤법률센터는 오바마 허수아비를 만들어놓고 이를 찌르거나 십자가를 태우는 등의 행위가 전국 20여 곳 이상에서 200여건이 넘게 보고됐다고 밝혔다. 수십년 전에 와해된 것으로 알려진 케이케이케이단은 최근 인종 범죄가 늘어나는 틈을 타 다시 고개를 내밀고 있다. 2주 전 이 단체의 루이지애나 보갈루사 지회의 대표가 회원으로 가입하려다 도중에 그만둔 여성을 총으로 쏴 2급 살해 혐의로 체포됐다. 보갈루사는 한때 케이케이케이단 본부가 있던 것으로 알려진 오지 마을이다. 대선 기간에 88명의 흑인 학생을 죽이고 14명을 참수한 뒤 오바마를 살해하려는 음모를 꾸민 혐의로 체포된 두명의 백인우월주의자도 켄터키 케이케이케이단과 연계가 있었다.
1990년대 초 400만명까지 늘어났던 케이케이케이단의 현재 회원은 6천명에 불과하지만, 경제 위기와 흑인 대통령의 백악관 입성 등을 배경으로 세력을 넓혀가고 있다. 연방수사국은 아직 올해 증오 범죄 건수를 집계하지 않았지만 전문가들은 지역신문 보도 등을 근거로 놀라울 정도로 급증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캘리포니아 샌버나디노 ‘증오와 극단주의 연구센터’의 브라이언 레빈 소장은 최근 증오범죄의 증가에 대해 “불이 붙기 전에 피어오르는 연기와 같다”고 말했다.
이근영 기자 ky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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