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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제로금리에 달러 추락
엔화대비 가치, 13년만에 최저…국채수요 감소로 재정지출 부담
엔화대비 가치, 13년만에 최저…국채수요 감소로 재정지출 부담
미국이 사상 최초로 ‘제로 금리’ 시대에 진입하면서 달러 가치의 하락 압력이 커지고 있다.
달러 가치의 하락은 미국 채권값을 떨어뜨려(금리 상승), 구제금융과 경기부양책에 쏟아부어야 할 천문학적인 자금을 외국으로부터 조달해야 하는 미국의 부담을 가중시킬 수 있다.
달러화는 17일 뉴욕 외환시장에서 엔화 대비 87.14를 기록했다. 엔화를 상대로 한 달러의 가치가 1995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진 것이다. 이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연준)가 기준금리를 0~0.25%로 낮추고, 회사채와 모기지 담보 증권까지 매입해 통화를 팽창시키는 ‘양적 완화’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지 하루 만의 일이다.
달러-유로 환율도 1유로당 1.44달러를 기록해, 전날의 1.39달러에서 3.4%포인트 상승했다. 1999년 유로화 출범 이후 가장 큰 하루 상승폭이자, 지난 석 달 새 최대치다. <뉴욕 타임스>는 18일 “미국이 새로운 초저금리 시대로 들어가면서 달러가 빠른 하강곡선을 그리고 있다”고 전했다.
달러 가치가 하락한 것은 공급이 크게 늘 것이란 전망 때문이다. 달러 공급이 늘면 상대적으로 수요가 줄어 가격은 하락하기 마련이다. 초저금리의 달러 대신 높은 금리를 제시하는 다른 통화를 찾으려는 투자자들의 움직임이 가세할 수 있다.
이런 움직임은 지난 7월 이후 세계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이 높아지자 안전자산 선호 현상으로 달러 수요가 크게 늘면서 나타난 달러 강세의 전환마저 예고하고 있다. 씨티그룹의 통화 수석분석가인 톰 피츠패트릭은 <월스트리트 저널>에 “이런 움직임이 언제 끝날지 지금으로선 말하기 어렵지만, 상당한 수준의 달러 약세가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내년 1조달러가 넘을 것으로 전망되는 재정적자와 8천억~9천억달러에 이르는 무역적자의 늪에 빠진 미국 정부는, 금융위기 해결에 필요한 자본을 외국에서 조달하기 위해 채권을 발행해야 할 형편이다. 미국 국채의 발행량이 늘면서 금리는 높아지고(가격 하락) 달러 가치는 추가 하락할 가능성이 높다.
<로이터> 통신은 “미국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두 곳의 전쟁과, 은행 시스템 구제 및 경기부양책에 쓸 천문학적인 자금을 마련해야 한다”며 “투자자들에게 미국 국채를 사도록 확신시켜야 하는 미국으로선 어느 때보다 강한 달러가 필요하지만, 투자자들은 거의 제로 금리에 불과한 미국 국채에서 점차 멀어질 것”이라고 보도했다. 중국 관영 영어신문 <차이나 데일리>는 17일 사설에서 “(중국이) 미국 국채 매입을 무한정 지속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6529억달러의 미국 국채를 보유하고 있다.
단기간 달러 약세에는 이견이 거의 없지만, 중장기적으론 달러가 다시 강세를 회복할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경제 온라인 전문 <아르지이 모니터>는 17일 △세계의 외환 보유고 다양화의 어려움 △미국 경상수지의 개선 조짐 △1조달러에 이르는 미국의 국외 투자금 회수 △미국 금융기관들의 국외 자산 매각 등이 중장기 달러 강세를 뒷받침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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