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바뀌어도 건재
25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연준) 의장을 재지명한 것은 이미 어느 정도 예견됐던 일이다.
<뉴욕 타임스>는 백악관 관리의 말을 인용해 “오바마 대통령은 4~5주 전에 버냉키 의장의 연임을 결정했다”고 보도했다. 버냉키 의장은 대공황 이후 최악의 금융위기 국면에서 적절한 대처로 파국을 피하게 했을 뿐 아니라, 더욱이 지난해에는 얼마가 될지도 알 수 없었던 경기침체의 그림자를 불과 1년만에 걷어내게 한 데도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했다. 특히 과감한 금리인하, 금융권에 대한 구제금융 집중투입 등으로 경제의 수직하락을 최대한 막아냈다는 게 그에 대한 일반적인 평이다.
버냉키 의장은 최악의 금융위기 발생 과정에서 사전 경보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지난해 9월 리먼브라더스의 파산을 방치해 금융시장을 붕괴 직전까지 몰고가는 최악의 실수를 저질렀다는 점이 자주 비판받으면서, 금융 위기 직후에는 ‘버냉키 경질론’ 목소리가 매우 높았다. 이 때문에 오바마 대통령 취임 직후에는 래리 서머스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이 차기 연준 의장에 임명될 것이라는 전망이 유력시되기도 했다.
그러나 금융 위기의 ‘소방수’로 나서 지금까지 복잡하고 방대한 일을 맡아와 이제는 버냉키 외에는 당장 감당할 이가 없다는 현실적 이유가 더 컸던 것으로 보인다. 오바마 대통령으로선, 이제 겨우 경제가 살아날 조짐을 보이는 시기라, 시장에 불확실성을 늘리는 것은 최대한 피할 수 밖에 없다.
버냉키 의장은 조지 부시 대통령에 의해 임명됐을 뿐 아니라, 공화당원이기도 하다. 민주당 소속인 오바마 대통령이 버냉키 의장을 재지명한 것은 정권이 바뀌어도 중앙은행인 연준 의장은 쉽게 바꾸지 않는 수십년간 이어진 전통도 따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공화·민주 양쪽 모두에서 아직 그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지닌 의원들이 많아 의회 인준 과정이 쉽지만은 않을 전망이다.
워싱턴/권태호 특파원 ho@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