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재판회부 수감자 286개 혐의 중 1개만 유죄
배심원, 직접적 테러와 무관 판단…보수파 반발
배심원, 직접적 테러와 무관 판단…보수파 반발
관타나모수용소 수감자로는 처음으로 미국 민간법정에 선 테러 혐의자가 기소됐던 286개 혐의 중 1개 혐의만 유죄 평결을 받았다. 그동안 관타나모수용소 수용자에 대한 기소가 무분별하게 이뤄졌음을 방증한 셈이지만, 보수파들이 이번 평결을 두고 군사재판 대신 민간재판에 회부하는 것이 효과적이지 않다고 비난하고 있어 미국 내 논란이 증폭될 전망이다.
뉴욕연방지법 배심원단은 1998년 탄자니아와 케냐 미국대사관 폭파 사건 연루 혐의로 기소된 탄자니아인 아흐메드 칼판 가일라니(36)가 적용받은 혐의 대부분에 대해 17일 무죄라고 평결했다고 <에이피>(AP) 통신 등이 전했다. 인정된 단 한가지 혐의는 미국 국가재산 파괴 모의로, 테러와 직접적 연관이 있는 살인이나 대량파괴무기 사용 혐의 등은 모두 무죄를 인정받았다. 미국 법무부는 당시 폭파사건 사망자 224명 한 명 한 명에 대한 살인 혐의를 적용해 모두 286개 혐의로 가일라니를 기소했다.
법무부는 공소장에서 가일라니가 테러에 쓰인 닛산 트럭과 폭탄 등을 알카에다 조직이 구입하도록 도왔다고 주장했다. 가일라니가 테러 하루 전 파키스탄으로 도망갔고 이후 아프가니스탄에서 지내면서 오사마 빈라덴의 요리사와 경호원으로 일했다고도 주장했다. 2004년 파키스탄에서 체포된 그는 이후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운영하는 국외 비밀수용소에 갇혀 있다가 2006년부터 관타나모수용소에 수감돼 왔다.
법무부는 애초 가일라니에게 폭탄 등을 팔았다고 진술한 탄자니아인 후세인 아베베를 증인으로 채택하려 했으나, 재판부는 중앙정보국이 가일라니에게 물고문 등을 가해 아베베의 존재를 알아냈다는 이유로 아베베의 증인 채택을 거부하기도 했다. 이후 법무부는 법정에서 “그는 가일라니다. 그는 알카에다다. 테러리스트다. 살인자다”라는 ‘선동적’인 표현까지 써가며 가일라니를 잔인한 테러리스트로 묘사하려 했다.
변호인단은 가일라니가 알카에다 조직의 음모를 알지 못했으며, 알카에다에 이용당한 어수룩한 심부름꾼에 불과하다고 맞받았다. 가일라니에게 적용된 국가재산 파괴 모의 혐의는 최소 20년에서 최대 종신형까지 받을 수 있다. 선고 예정일은 내년 1월25일인데, 변호인단은 항소할 뜻을 밝혔다.
이번 재판은 9·11 테러 주모자 중 한 명인 칼리드 셰이크 모하메드 등 관타나모수용소 수감자들을 민간재판에 회부하는 첫 시험대였다. 하원 정보위원회 소속 공화당 의원 피터 훅스트라는 “관타나모수용소 수감자의 민간재판 회부는 실수였으며, 앞으로도 제대로 되지 않을 것”이라는 내용의 성명을 냈다. 반면 가일라니의 변호인단은 “이번 평결은 미국 사법시스템의 우수성에 대한 재확인”이라고 밝혔다.
조기원 기자 gard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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