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베르토 그라나도
낡은 오토바이를 몰고 혁명가 체 게바라와 함께 남미대륙을 횡단했던 의사 알베르토 그라나도(사진)가 5일 수도 아바나에서 노환으로 숨졌다고 쿠바 국영 텔레비전이 보도했다. 향년 89.
게바라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2004년)라는 영화로도 제작된 이 여행을 계기로 평범한 의대생에서 혁명가로 변신했다.
아르헨티나 출신인 그라나도와 게바라는 각각 30살과 24살 때인 1952년 그라나도의 500㏄ 오토바이를 타고 함께 여행을 떠났다. 8개월 남짓 동안 칠레·콜롬비아·페루·베네수엘라 등 8000㎞를 돌아다닌 그들은 착취당하는 광산노동자, 박해받는 공산주의자, 가난에 찌든 농부들의 모습을 보며 남미대륙 전반에 만연한 사회적 불평등을 자각했다.
페루 산파블로 나환자촌을 방문했던 일은 두 사람 모두의 인생에 큰 전환점이 됐다. 그라나도는 2005년 <비비시>(BBC) 인터뷰에서 당시 “체(게바라)가 제도권 의료에 작별을 고하고 민중들의 의사가 되기로 결심했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베네수엘라에 남아 한센병 환자 치료센터에서 일하고 게바라는 아르헨티나로 돌아가 학업을 마치기로 하면서 둘의 여행은 끝났다. 그 뒤 그라나도는 <체 게바라와의 여행>으로, 게바라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로 여행기를 남겼고, 이 기록들을 바탕으로 훗날 영화가 제작될 수 있었다.
멕시코에서 만난 피델 카스트로와 쿠바혁명을 일으켜 성공한 게바라는 1960년 그라나도를 쿠바에 초청했고, 그라나도는 이듬해인 61년 가족들과 함께 쿠바로 이주해 아바나대학에서 생화학을 가르쳤다. 남미 전체 혁명을 꿈꾼 게바라는 67년 볼리비아 산악지대에서 게릴라 활동을 벌이다가 정부군에 사살됐다.
그라나도는 자신이 죽으면 화장한 뒤 아르헨티나·쿠바·베네수엘라에 유해를 뿌려달라는 유언을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조기원 기자 gard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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