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라덴 사살 이후]
희생자 가족들 편지·꽃다발
성지순례하듯 방문객 가득
이슬람사원에 혐오감 표출도
오바마 대통령 5일 방문예정
희생자 가족들 편지·꽃다발
성지순례하듯 방문객 가득
이슬람사원에 혐오감 표출도
오바마 대통령 5일 방문예정
뉴욕 ‘그라운드 제로’ 분위기
“내 딸, 시타, 사랑해, 너무 보고싶어. 우린 결국 그(빈라덴)를 잡았어.(We got him)”
3일(현지시각) 오후 9·11 테러 현장인 세계무역센터가 있던 자리인 ‘그라운드 제로’를 둘러싼 공사장 철망에는 희생자 가족들이 쓴 것으로 보이는 편지, 꽃다발 등이 여기저기 붙어 있었다.
하루가 지난 탓인지, 오사마 빈라덴 사살 소식이 처음 알려진 지난 2일 새벽의 흥분은 가라앉았지만, 그라운드 제로에는 평상시 몇 배에 이르는 방문객들이 몰려들었다. 무역센터 맞은 편 세인프폴 성당에서 신호등을 건너 전철역이 있는 곳까지 약 100m에 이르는 건물 사잇길이 마치 성지순례를 하는 듯한 방문객들로 가득 찼다. 방문객 사이사이에는 소총을 어깨에 맨 경찰들이 경비를 서고, 무역센터 맞은 편 연방우체국 건물 앞길은 <에이피>(AP) 통신, <시엔엔>(CNN) 등 신문·방송 기자들이 천막을 쳐 길가에 간이 프레스센터가 만들어져 있다.
언제부턴가 그라운드 제로는 뉴욕 방문길에 빼놓으면 안되는 명소가 됐다. 다만 이곳에선 여늬 관광지와 달리 웃으며 사진찍는 건 금기였다. 그러나 이날 사람들의 얼굴은 한결 여유로왔고, 웃음 띈 얼굴도 꽤 많았다. 유모차에 1살박이 아들을 태운 마가레타 플립퍼(24)는 남편, 어머니 등 온가족이 총출동했다. 오하이오에서 성장한 그는 뉴욕에 온 지 4년 됐다. “뉴욕에 살면서도 그라운드 제로를 찾은 건 이번이 2번째”라는 그는 “빈라덴의 죽음이 이곳을 다시 찾게 했다”고 말했다. 남편은 이번 ‘빈라덴 작전’을 수행한 네이비 실(미 해군 특전지원단) 출신이다. 카키색 판팔 티셔츠 왼쪽 가슴에 ‘네이비’라는 영문 글씨가 선명하다. 9·11 테러 당시 중학생이었다는 마가레타는 “내가 사는 곳은 뉴욕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너무너무 무서웠다. 한 미친 사람이 3000명의 목숨을 앗아갔다”고 말했다.
철망에는 9·11 테러로 숨진 희생자들의 이름을 빼곡이 적어 성조기 무늬를 만든 ‘영광의 깃발’도 걸려있었다. 깃발 아래쪽에는 “우리는 이들을 절대 잊지 않을 것”이라고 적혀있다. 깃발 한쪽에는 누군가가 볼펜으로 “고맙습니다. 오바마 대통령님”이라고 썼고, 그 옆에는 아마도 공화당 지지자인 듯 “고맙습니다. 조지 부시 대통령님”이라는 낙서도 적혀 있다. 오사마 빈 라덴의 얼굴과 그의 사살 소식이 실린 전날 뉴욕의 일간지 사진이 마치 희생자들에게 보고를 하는 것처럼 철망 한쪽에 빼곡히 붙어있다.
독일 뒤셸도르프에서 3주 신혼여행으로 미 동부지역을 다니기 위해 지난 1일 막 뉴욕에 도착했다는 팀(30)과 스벤냐(30) 부부는 미국인 방문객에 비해선 상대적으로 차분해 보였다. 통신회사에 다닌다는 스벤냐는 “빈라덴이 사살되는 날 뉴욕에 온 셈인데, 그것과 상관없이 이곳에 꼭 와보고 싶었다”며 “빈라덴의 죽음과 상관없이 수많은 희생자를 생각하면, 여전히 내 마음은 슬프다”고 말했다.
그라운드 제로에서 불과 두 블록, 직선거리로 50m 정도 떨어진 곳에는 최근까지 논란을 빚었던 이슬람 사원(모스크) 건립 예정지가 있다. 간판도, 아무런 표시도 없다. 뉴욕 어디에나 볼 수 있는 낡은 4층짜리 건물이다. 다만 철제 울타리를 치고, 경찰이 그 앞을 지키고 있다는 게 다른 건물과의 차이다. 이곳에서 만난 우드밀라(56·도서관 사서)는 이슬람에 대한 혐오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그는 9·11 당시 자신이 일하던 도서관이 무역센터 건물 53층에 있었고, 그날 출근길에 비행기가 건물에 꽂히는 장면을 그대로 봤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슬람 사람들은 9·11 직후, 공적인 공간에서 춤추고 즐거워했다. 지금은 빈라덴의 죽음에 매우 당황하고 있다”며 확인되지 않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종교의 자유가 있지 않느냐’고 하자, “이슬람 신자들은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느냐. 모스크가 완공되면, 저곳에서 하루 5번씩 이슬람의 신에게 기도할 것이다. 3000명이 이슬람에 의해 숨진 무역센터 바로 앞에서”라고 말하며 제풀에 흥분해 목소리를 높였다. 빈라덴은 사라졌지만, ‘화해’는 좀더 시간이 걸릴 것 같다.
뉴욕/권태호 특파원 ho@hani.co.kr
뉴욕/권태호 특파원 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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