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인 피터 제닝스 사망
미국 ‘ABC방송’ 간판 앵커…‘월드뉴스투나잇’ 20여년 진행
미국 <에이비시(ABC)방송>의 간판 앵커인 피터 제닝스(67)가 7일 폐암 투병 끝에 가족과 친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뉴욕의 집에서 숨을 거뒀다고 가족들이 밝혔다.
데이비드 웨스틴 <에이비시방송> 사장은 “피터는 동료이자 친구였고, 여러 면에서 우리의 지도자였다”며 “그가 없는 세상이 우리에게 똑같지 않을 것”이라며 애석해 했다.
그는 지난 4월5일 녹음테이프를 통해 자신의 폐암 발병소식을 전하면서 쉰 목소리로 “방송을 계속할 것”이라며 방송 복귀 의욕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끝내 뉴스 진행을 다시는 보여주지는 못했다. 다만 항암 치료를 받는 도중 종종 사무실에 들르고, 전화와 이메일로 뉴스 기획·제작에 참여하는 등 복귀 의지를 불태웠던 것으로 알려졌다.
‘제임스 본드’를 닮은 깔끔한 용모의 제닝스는 <엔비시(NBC)> ‘나이틀리 뉴스’의 탐 브로코, <시비에스(CBS)> ‘이브닝 뉴스’의 댄 래더와 함께 미 공중파 방송의 스타 앵커 ‘빅3’ 시대를 구가했던 방송인이다. 지난해 대선을 끝으로 브로코가 은퇴한 데 이어 래더가 대선 과정에서의 오보 여진을 남긴 채 은퇴 한 이후, 제닝스마저 유명을 달리함으로써 미 공중파 방송의 트로이카 시대는 마침표를 찍었다.
20년 넘게 노익장을 과시하던 이들 트로이카는 모두 미국 명문대 출신이 아니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특히 제닝스의 이력이 가장 독특하다. 캐나다 전국방송의 첫 앵커였던 찰스 제닝스의 아들로 1938년 캐나다 토론토에서 태어난 제닝스는 9살 때 캐나다의 <시비에스>에서 토요일 아침 라디오 어린이방송을 진행하면서 방송계에 입문했다. 이후 사립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온타리오 라디오 방송국에서 일하다가 1962년 <캐나다티브이>의 공동 앵커가 됐다.
1964년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를 취재하던 저돌적인 기자 제닝스는 <에비시방송> 뉴스국장의 눈의 띄어 1965년 <에이비시> 뉴스 앵커로 데뷔한다. 3년 만에 앵커를 그만두고 해외특파원으로 변신한 그는 1972년 뮌헨올림픽 인질사건 보도 등으로 이름을 날린 뒤 1978년 3인의 앵커가 공동 진행하던 <월드뉴스투나잇>의 런던 앵커로 다시 복귀했다. 1983년 단독앵커로 <월드뉴스투나잇>을 진행하면서 풍부한 국제뉴스 취재 경험을 바탕으로 베를린장벽 붕괴, 1차걸프전 등을 보도하면서 이름 그대로 월드뉴스의 성가를 드높였다.
류재훈 기자 hooni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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