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집단 ‘다윗파’에 쏠리는 눈
17일 밤 발생한 비료공장 폭발 사고로 미국 텍사스주 웨이코가 다시 한번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인구 12만4000여명의 웨이코는 시골 마을이다. 텍사스주 매클레넌 카운티 청사 소재지라는 점을 빼면, 그저 한적하다. 20년 전, 이 전원마을은 끔찍한 참사로 세상에 그 이름을 알렸다.
1993년 2월28일, 미 연방수사국(FBI)이 웨이코 북쪽 카멀산 기슭의 ‘다윗파’ 본부 건물을 포위했다. 광신적 종교집단인 다윗파는 1980년대부터 이곳에서 집단생활을 해왔다. 교주는 ‘재림예수’를 자처하는 미국인 데이비드 코레시(당시 33살)였다.
종말을 앞두고 전쟁을 수행한다며 이들이 총기로 무장하고 있다는 정보를 연방수사국이 입수했다. 압수수색은 총격전으로 번졌다. 신자 6명과 연방수사국 요원 4명이 죽었다. 이후 51일간의 대치가 이어졌다. 협상은 실패했고, 당국은 강제진압을 결정했다. 4월19일, 장갑차를 앞세워 요원들이 들이닥치는 순간, 건물에 불길이 치솟았다. 나중에 발견된 사망자 86명 가운데 상당수는 이미 머리에 총을 맞은 상태였다. 교주 코레시도 현장에서 죽었다.
미 정부는 “신도들이 서로 쏘아 죽이고 스스로 불을 질렀다”는 진상조사 결과를 발표했지만, 과도한 진압에 대한 비판도 있었다.
19일은 ‘웨이코 참사’가 일어난 지 꼭 20년이 되는 날이다. 구글 지도를 살펴보면, 이번에 폭발이 일어난 비료공장은 다윗파 신자들이 죽은 카멀산 기슭에서 20~30㎞ 떨어져 있다. 사건 발생 시기와 지역적 특성으로 보아, 두 사건 사이에 어떤 연관이 있는 게 아니냐는 추정도 있다.
‘웨이코 참사’는 기독교 원리주의자 및 백인 극우집단 사이에 연방정부에 대한 적개심을 고조시키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참사 2년 뒤인 1995년 4월19일, 걸프전 참전 군인인 티머시 맥베이(당시 27살)가 폭탄을 실은 트럭을 몰고 오클라호마시티 연방청사에 돌진했다. 모두 168명이 죽었다. 체포된 맥베이는 “정부가 웨이코에서 저지른 행위에 대한 보복”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2001년 6월 사형당했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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