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럴드 누하스
미국 첫 전국 일간지 창간 누하스
미국 유력 일간지 <유에스에이투데이>의 창립자 앨런 해럴드 누하스(사진)가 19일 미국 플로리다주 자택에서 사망했다. 사인은 낙상 후유증으로 알려졌다. “언론계에서 가장 영향력 높았고 때로 논쟁적이었던 인물이 89살을 일기로 세상을 떴다”고 <유에스에이투데이>는 보도했다.
누하스는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등 ‘지역 일간지’ 중심의 미국 신문 시장을 혁신한 인물로 평가된다. 그는 1982년 9월, 미국 최초의 전국 종합 일간지 <유에스에이투데이>를 창간했다. 이 신문은 디자인·편집·마케팅 혁신으로 창간 3년여 만에 <월스트리트저널>에 이은 미국 판매부수 2위 신문의 자리에 올랐다.
그의 일생은 신문에 바쳐졌다. 가난하게 자란 10대 초반, 신문을 배달하며 가족의 생계를 도왔다. 고등학교 시절엔 교내 신문 편집장을 지냈다. 사우스다코다대학에선 학생회 기관지 편집장을 맡았다. 대학 졸업과 함께 스포츠 주간지를 직접 창간했다.
지역 신문 <마이애미헤럴드>에서 두각을 나타낸 뒤, 미국 최대 언론그룹 가넷으로 자리를 옮겨 플로리다 지역 일간지 <투데이>를 성공적으로 창간했다. 1979년 가넷그룹 대표이사로 취임한 뒤, 짧은 기사와 화려한 편집의 ‘독자 친화적, 광고주 친화적 신문’을 표방한 <유에스에이투데이> 창간을 진두지휘했다. 그 무렵의 누하스에 대해 <로스앤젤레스타임스>는 “조각배에 작살을 싣고 모비딕 사냥에 나서는 사람”이라고 평했다.
비평가들은 그의 신문 철학에 비판적이었다. “짧게, 그리고 빨리 기사를 쓰라”는 <유에스에이투데이>의 기사작성 지침을 빗대어 “신문계의 패스트푸드, ‘맥페이퍼’가 등장했다”고 평했다. 디자인 혁신을 통한 공격적 마케팅을 보여준 이 신문을 신문 위기 극복의 전범으로 평가하는 이들도 있었으나, 최근에는 이 신문사 역시 경영난으로 구조조정을 거듭하고 있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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