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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미국·중남미

‘멀쩡한 미국인’ 형제는 갑자기 왜 ‘지하드 전사가’ 됐을까

등록 2013-04-21 20:48수정 2013-04-21 22:27

보스턴 테러 용의자 체첸형제
“오늘 밤 여전히 답이 없는 질문들이 있다. 우리 공동체와 국가의 일부로서 여기서 자라고 공부한 이 젊은이들이 왜 그런 폭력에 의존했는가? 그들은 어떻게 이런 공격들을 계획하고 실행했는가, 그리고 어떤 도움을 받았는가?”

보스턴 마라톤 테러 용의자인 조하르 차르나예프(19)가 생포된 19일(현지시각) 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이렇게 물었다. 오바마의 질문엔 앞으로 미국 사회가 풀어가야 할 묵직한 과제가 담겨 있다.

체첸계로 2002년 미국에 온 형제는 겉으론 ‘멀쩡한 미국인’이었다. 경찰과의 총격전 중 숨진 형 타메를란(26)은 2009년 전미 아마추어 권투 챔피언십 4강전에 출전한 복서였다. 아내와 세살짜리 딸도 있었다. 다트머스 매사추세츠대학에 다니던 동생 조하르는 영민했고 사교적이었다. 명문으로 꼽히는 린지 앤 라틴 고교의 레슬링팀 주장으로도 활약했다. 조하르는 2012년 9월11일 시민권을 받아 진짜 미국시민이 됐다.

모범생이던 동생 조하르
대학 입학뒤 방황 거듭
이슬람 심취 형 타메를란
2년전에 FBI 조사받기도

전문가들 “정체성 혼란과
이민자 고립감 때문 범행”

하지만 이들의 내면은 요동치고 있었다. 조하르는 고등학생 때 매사추세츠대학의 체첸 역사 전문가인 브라이언 글린 윌리엄스 교수에게 체첸에 대해 알고 싶다고 편지를 썼다. 윌리엄스 교수는 1940년대 체첸인 30%를 숨지게 한 스탈린의 강제이주정책, 1990년대 체첸자치공화국 인구 100만명 중 20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두 차례의 러시아-체첸 전쟁에 대한 자료를 보내줬다. 모범생이었던 조하르는 대학 입학 뒤 최근 3학기 동안 7개 과목에서 낙제했다고 <더 타임스>는 보도했다.

타메를란은 동생만큼 미국에 잘 적응하지 못했다. 대학을 중퇴했고, 무엇보다 ‘미국인 친구’가 없었다. 2009년엔 폭력 사건으로 체포되기도 했다. 이슬람에 심취하기 시작한 2008년부터 술과 담배를 끊었고, 아내에겐 히잡을 쓰도록 강요했다. <타임>은 조하르가 형을 매우 존경했고, 모스크에서 열리는 금요예배에도 데려갔다는 친구들의 말을 전하며 조하르가 타메를란의 이슬람주의에 깊이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자신의 웹페이지에 급진적 이슬람주의에 관한 자료를 올려놓았던 타메를란은 테러리즘 세력을 색출해온 러시아 정보기관에 포착됐다. 러시아 정부는 2011년 “타메를란이 급진적 이슬람 추종자로 2010년 이후 급격하게 바뀌었다. 그가 지하단체 가입을 위해 러시아로 여행할 준비가 돼 있다”고 미국에 알렸다. 미국 연방수사국(FBI)은 당시 그의 통화 내역과 온라인 활동, 여행 기록 등을 조사했으며 2~3차례 불러 심문도 했다. 그러나 혐의점을 찾지는 못했다. 타메를란은 지난해 여권 갱신을 이유로 출국해 체첸자치공화국과 잇닿은 러시아 남부 다게스탄에서 6개월간 생활했다. 연방수사국은 이 러시아 여행 때 그가 누구를 만났고 무엇을 했는지에 대해 수사 초점을 맞추고 있다.

차르나예프 형제처럼 오랫동안 미국인으로 살아가던 이슬람권 출신 젊은이들이 갑자기 ‘이슬람 전사’로 변한 사례는 많다. 2010년 뉴욕 타임스스퀘어에서 차량폭탄테러를 시도했던 파키스탄계 청년은 미국에서 경영학석사(MBA) 학위를 딴 금융분석가였고, 2009년 텍사스에서 민간인·군인 13명을 죽인 이는 팔레스타인 출신 군 정신과 의사였다. 같은 해 뉴욕 지하철 폭탄공격을 계획했던 아프간계 20대 젊은이는 맨해튼 거리에서 커피를 팔았는데 그의 수레엔 ‘신이여, 미국을 도우소서’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뉴욕 타임스>는 형제의 범행 동기로 이슬람과 미국이라는 두 세계가 충돌하는 데서 느끼는 정체성 혼란과 이민자로서의 고립감을 짚었다. ‘뉴아메리카재단’의 테러리즘 전문가인 브라이언 피시먼은 “아랍계 미국인들이 지하드(성전) 전사로 변한 것은 ‘너는 미국이 먼저냐, 이슬람이 먼저냐’라는 질문 앞에서 행동으로 답해야 한다는 압박을 느끼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세계에서 가장 풍요로운 나라, 미국에서 소외된 이들 ‘외로운 늑대’들은 자신의 정체성과 뿌리를 찾기 위해 이슬람에 다가가고, 일부는 반미를 내세운 과격한 행동주의에 심취해 ‘외로운 지하드 전사’로 거듭난다. 인터넷은 이러한 외로운 전사들을 양성하는 ‘온라인 교육기관’이 되기도 한다. 이슬람 및 테러리즘 전문가인 도미니크 토마스 프랑스 고등사회과학연구원 교수는 <프랑스24> 인터뷰에서 “아마도 이들 형제는 체첸어 및 영어로 된 (지하드 관련) 온라인 출판물을 읽었을 것이다. 인터넷으로 지하드의 이념을 흡수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워싱턴/박현 특파원, 이유주현 기자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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