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리치 헤이븐스
60년대 저항정신 노래했던 리치 헤이븐스…심장마비로 사망
1969년 8월15일, 미국 뉴욕 근교 베셀의 평원에 무대가 마련됐다. 기타를 멘 흑인 가수가 첫 공연을 맡았다. 그의 격정적인 기타 연주 앞에 관객은 숨죽였다. 마침내 터져 나온 노래의 첫 가사는 “자유, 자유, 자유, 자유”였다. 흑인영가를 즉흥적으로 개작한 ‘프리덤’이라는 노래였다.
이날부터 18일까지 나흘 동안 ‘우드스탁 페스티벌’이 열린 농장에는 40만여명이 모여들었다. 평화와 반전을 외치는 젊은이들의 저항 정신이 음악에 녹아들어 분출됐다. 3시간에 걸친 첫 공연을 장식한 가수 리치 헤이븐스는 당대 저항문화의 표상으로 떠올랐다(사진). 첫 노래 ‘프리덤’은 반전 세대의 대표곡이 됐다.
그가 죽었다. 우드스탁의 전설, 리치 헤이븐스가 22일 미국 뉴저지주 저지시티의 자택에서 72살을 일기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고 <로이터> 등 외신이 보도했다.
헤이븐스는 1941년 뉴욕 브루클린에서 9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길거리에서 노래를 익혔고, 흑인 교회에서 영가를 불렀다. 20살이 되던 해, 예술가들이 집거한 뉴욕 그리니치 빌리지로 이사했다. 본격적으로 포크를 파고 들면서, 호소력 깊은 기타 연주와 열정적 목소리를 겸비한 재능을 인정받았다.
상업적으론 큰 성공을 이루지 못했으나, 1965년 이후 2008년까지 25개 이상의 앨범을 내면서 ‘흑인 포크 싱어’의 명성을 지켰다. 1993년 빌 클린턴 대통령 취임식에서 축하 공연을 맡을 정도로 1960~70년대 청년기를 보낸 이들의 영원한 우상이었지만, 2010년 신장 수술 이후엔 음악 활동을 사실상 중단했다. 대신 환경 문제에 관심이 많아 각종 환경재단의 설립을 주도하거나 도왔다.
생전 헤이븐스의 에이전트였던 루츠사는 이날 “맹렬하고도 가슴에 사무치는, 영혼이 깃든 그의 노래 스타일은 앞으로도 영원히 특별하게 기억될 것”이라며 애도했다.
안수찬기자ahn@hani.co.kr, 사진 AP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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