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외교 관계와 스노든 도피 경로
미, ‘도망자 협조국’에 분노 표출
중·러에 “양국관계 부정적 영향”
중 외교부 “미 비판 근거 부족”
인민일보 “강도가 나무라는 꼴”
중·러에 “양국관계 부정적 영향”
중 외교부 “미 비판 근거 부족”
인민일보 “강도가 나무라는 꼴”
‘빅 브러더’ 미국의 실체를 폭로한 에드워드 스노든(29)이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에 마냥 호락호락하지만은 않은 나라들을 거쳐 추적을 따돌리자 미국이 얼굴을 붉히고 있다. 스노든 사태 여파로 중국·러시아·남미 좌파 집권 국가들과 미국의 잠재된 외교갈등이 물 위로 떠오르는 상황이다.
25일 <로이터>는 “미국 행정부와 의회 구성원들이 ‘도망자’ 스노든이 세계 곳곳으로 이동하는 데 일조한 각국 정부들한테 분노를 뚜렷이 드러냈다”고 보도했다. 미국은 스노든한테 망명처를 제공할 뜻을 비친 에콰도르를 포함해 홍콩, 러시아, 중국 등 관련국 정부에 노골적인 경고를 보내고 있다.
스노든은 지난 23일 홍콩을 떠나 러시아 모스크바에 도착한 뒤 행적이 묘연하다. <로이터>는 “스노든이 쿠바, 에콰도르, 아이슬란드 등으로 향할 수 있다는 첩보 보고서가 눈더미처럼 쌓였지만 진짜 행적은 미궁에 빠졌다”고 전했다. 스노든이 미국과 불편한 외교관계에 있는 나라들을 도피 경로로 절묘하게 활용했기 때문이다.
스노든이 홍콩을 거사 장소로 택해 35일을 머문 것은 이곳이 자유로우면서도 미국과 자웅을 겨루는 양대 강국(G2)인 중국의 그림자 안에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자국의 인권 문제와 사이버 해킹 문제를 제기해온 미국에 불편한 심기가 있어, 시민의 자유와 인권을 침해하는 미국 정보기관의 행태가 폭로된 것을 호재로 받아들일 여지가 크다.
미 백악관은 스노든의 도피를 방조했다며 중국 정부에 불쾌감을 표명했다. 제이 카니 백악관 대변인은 24일 “(스노든이 러시아로 간 것이) 출입국 당국자의 기술적인 결정에 따른 것이란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이번 결정은 미-중 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중국은 오히려 자국이 피해자라며 역공에 나섰다. 화춘잉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25일 미국의 비판을 “근거가 부족해 수용할 수 없다”며 “법에 따라 사건을 처리한 홍콩특별자치정부를 나무라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는다”고 맞받았다.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 해외판도 “미국이 칭화대학과 중국 이동통신사의 인터넷망에 침입해놓고도 사과나 해명도 없다”며 “강도가 미안한 마음도 없이 도둑맞은 사람의 합법적인 행위에 불만을 토로하는 게 과연 강대국이 취할 태도인지 의문”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스노든은 홍콩 이후 행선지로 러시아 모스크바를 택했다. 그는 현재 러시아 당국의 관리 아래에 있거나 남미의 ‘반미 벨트’에 속하는 에콰도르·베네수엘라의 모스크바 주재 대사관에 있을 가능성, 미국의 적성국인 쿠바로 떠날 가능성 등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이 모든 가능성은 미국이 스노든의 신병을 인도받는 데 걸림돌이 된다. 미국은 이들 국가에도 날을 세웠다. 케이틀린 헤이든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대변인은 24일 성명을 발표해 “러시아 정부가 스노든을 미국으로 돌려보내 법의 심판을 받을 수 있도록 모든 방안을 검토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또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공화당)도 주미 러시아 대사에게 서한을 보내 이번 사건이 양국 관계의 시험대가 될 것이라고 압박했다.
하지만 일이 미국 뜻대로 풀릴 조짐은 아직 눈에 띄지 않는다. 러시아는 묵묵부답이고, 에콰도르의 라파엘 코레아 대통령은 스노든의 망명 요청과 관련해 “주권적 결정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정세라 기자, 베이징/성연철 특파원 sera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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